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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경 Aug 14. 2019

이따금 찾아오는 질식

17살 늦봄, 처음으로 시를 시로 읽었던 순간

부모 품에 아등바등 드러누워

목청 높이는 아이야 울지 마라

소년의 아롱이는 곁눈질에

괜스레 설레는 소녀야 웃지 마라   

  

숨이 멎는 그날까지 심장을 쥐어짜

기관지 끝으로 뻗었다 다시 엉

소리 없이 흐르다가 이따금 차오르는

기쁘고, 즐겁고, 신나고, 설레이는 응어리     


횡격막이 터질 듯 깊게 내어 쉰다지만

끝끝내 뱉지 못하는 마지막 숨결처럼

뱉을 수만 있다면 진작에 뱉었을 것아.     


허름한 원룸 방구석에 찌그러져

탄식을 쏟아내는 청춘아 울지 마라

하루가 지날 즘 술상에 둘러앉은

고성방가 아저씨야 웃지 마라     


슬프고, 분하고, 억울하고, 짜증 나는

뱉을 수만 있다면 진작에 뱉었을 것아.     


턱밑까지 차오르는

기쁘고, 즐겁고, 신나고, 설레이는

슬프고, 분하고, 억울하고, 짜증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문학시간, 김영랑 시인의  '독을 차고'에 대한 수업이었다.

칠판 앞에서 열정적으로 시를 분석하고 있는 선생님을 뒤로하고 나는 딴생각에 빠졌다.


'가슴에 독'이란 문구가 머리로 비집고 들어왔다.

선생님의 해설은 귓바퀴에 맴돌 뿐, 나만의 해석을 시작했다.


"가슴에 독! 사실 감정이 아닐까?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잖아.

좋다, 싫다, 슬프다, 기쁘다, 왔다 갔다 하면서 얼마나 사람 피를 말리는지..

만약 감정이 없으면 마음이 한 결 가벼워지지 않을까?"


지금에 와서야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분명 나는 풀던 문제는 틀렸을테다.

확실히 나의 문학 성적은 썩 좋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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