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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경 Aug 15. 2019

장마가 끝나기까지

18살 여름, 장마철 하늘을 보다 마음도 흠뻑 젖었다.

D-3일

온전히 쏟지 않은 먹구름이 햇살을 머금습니다

쾌쾌한 하늘을 들이켜니 곰팡내가 나는 듯싶습니다

물 한 방울 쏟지 않은 눈이 뿌옇게 흐릴 따름


D-2일

잠잠하던 구름 덩이덩이 가랑비를 내립니다

창틀을 넘는 빗소리


머리맡이 축축이 젖어들 때 즈음

사람들의 발걸음은 빗소리에 묻혀 떠나가고 

나는 홀로 남았습니다


D-1일

갈가리 찢긴 구름 사이로 빛줄기가 떨어집니다

비 젖은 거리는 여전히 거무튀튀 하지만

이 것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듯싶습니다


D-day

마지막 한 뭉큼 까지 쏟아내고 여름 태양이 밝습니다

빗줄기를 훑기 바쁘던 눈으로 먹구름을 찾아보니

거뭇한 덩어리는 간데없고 하늘 위서 하얗게 빛납니다


하늘도 거리도 환하게 밝았지만

곰팡내가 가시려면 시간이 조금은 더 걸릴 듯싶습니다.



꽤 마음을 쓰던 아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에게 나는 썩 의미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사실이 장맛비에 더해 나를 꽤나 울적하게 만들었다.



정은 장마 같아서 한참을 쏟고 나면 여지없이 그치는 순간이 온다.


빗소리에 넋 놓고 있다 비가 그치면 콧구멍에 비린내가 기어들 듯

정 줄 때는 아무 생각이 안 들다가, 그치고 나면 꺼림칙하게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오다 말다, 주다 말다 반복하며 사람을 들었다 놨다

그러다가 아주 그쳐서도 꽤나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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