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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비친눈 Feb 14. 2019

늦은 추도

네 번째 재즈 이야기 : We will meet again

Jazz Memory #004


연말 어느 날, 교대 역에 동향 친구 넷이 모였다. 재밌지만 걸쭉한 입담의 엿배. 여전히 겜돌이에 까탈스런 땡보 교직원 택. 얼큰이 노안에 이젠 배불뚝이 옹. 그리고 나, 함보. 창원 아재 똥개는 단톡방에서 부러움을 표했다.


'자식들. 서울에 모여있으니 좋구만. 이참에 술도 좀 마셔.'

'똥개 올라와. 그럼 마셔줄게.'

'아놔 이거 참나 ㅋㅋㅋ'


다들 모이자 택이 앞장섰다. 도착한 고깃집 테이블에 앉아마자 아저씨 넷은 시끄럽다.


"함보, 차돌삼합 네 개 시켜라."

"이모, 차돌삼합 4인분에 참이슬 하나요."

"엉아가 괜히 여기 델꼬 왔겠나. 좀 이따 시키는 데로 묵어 봐라, 짜샤."

"닥쳐. 내가 뭐랬냐."


엿배는 역시 엿배다. 나이 먹어도 저 놈의 건방진 자신감은 변할 기미조차 없다. 옆의 택은 팔짱 끼고 손가락질에 혀를 끌끌 차고 있고 옹은 우리가 뭐라 나불대던지 역시나 아무 생각 없다. 빨리 먹어야 된단다. 엿배는 곧 출산을 앞둔 와이프의 눈치에 좀 억울해도 뭐라 하긴 거시기하니 적당히 있다 집으로 간단다. 아빠가 되는 건 이 자리에 없는 똥개 다음이다. 일단 다들 축하를 건넨다. 우리 식으로.


"아들이가, 딸이가?"

"아들. 때밀이 한 명 키우는 거지, 머."

"다행이네. 딸이 아니라서. 첫째 딸이면 니 닮아서 얼굴도 클 텐데."

"이 시바랄라가. 나 닮으면 그래도 동안이여. 옹, 너보단 나아."

"난 없다. 결혼 안 하는 게 편해."

"안 물었다, 택."


늘 그렇듯이 티격태격 대화가 의식의 흐름을 타고 제멋대로 이어진다. 소주잔 셋에 콜라 한 잔이 고기 살점 위에서 쨍하고 부딪힌다. 말은 그렇게 한 번도 안 했지만 우리 넷은 한 해가 무사히 지나감에 안도했고 한 친구의 인생에 다른 한 막이 시작되는 걸 진실로 잘되길 빌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우리 다섯이 연락하고 사는 건 모두 녀석 때문이다.

석봉이. 그 녀석이 아니었으면, 옹과 엿배가 평생 서로 다시 만날 일은 없었을 거다.

8년 전 가을이었다. 엿배가 LA에서 돌아왔다. 그때의 난 고향 집에서 요양 중이었다. 돌아온 엿배를 고향집 부근에서 썩 좋지 않은 상태로 재회했다. 녀석은 나를 보더니 팔로 등짝을 툭 치며 말했다.


"내 살 많이 빠졌재?"

"병신."


우리 둘은 간만의 만남에 서로를 확인했다. 너무 잘 아는 사이니 더 물어볼 건 없었다. 엿배는 다시 돌아왔으니 여기서 뭐라도 해보련다는 말과 함께 석봉이를 입에 올렸다. 귀국 전에 연락했는데, 한동안 방황하던 녀석이 이제는 무언가를 제대로 해보겠다고 했단다. '잘 됐네'. 비록 내 상황은 좋지는 못했지만, 옛 친구에 대한 진심 어린 내 대답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였다. 전화 너머로 엿배의 슬픔이 들렸다.


"야, 석봉이가 한 달 전에 죽었단다. 교통사고로."


믿을 수가 없었다. 아직 20대인데 죽다니. 그렇게 어이없이 가다니. 우리 셋은 모두 고3 같은 반 친구였지만,  나와 석봉이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졸업 후 석봉이를 만난 것은 학부 2년 차에 엿배와 내가 함께 살던 방에 하룻밤 자러 왔을 때였다. 그 어색한 만남 속에서도 소주 한 잔 기울이며 별 얘기를 다 했었다. 그게 녀석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술자리였을 줄이야. 이미 장례를 다 치른 후였지만, 엿배는 자신은 따로 추도해야겠다면서 석봉이의 유골이 뿌려진 장소를 다녀오고 녀석의 부모님을 찾아뵙겠다고 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슬퍼하는 내 친구에게 조심히 잘 다녀오라는 말 밖에는.


석봉이의 죽음에 사이가 갈라졌던 두 친구, 엿배와 옹이 비로소 만났다. 석봉이는 틀어진 자기 친구들 사이를 오가며 몇 년동안이나 화해하라고 타일렀다. 그럼에도 꿈쩍 않던 녀석들이 친구의 죽음 후에야 비로소 만나 같은 슬픔으로 화해했다. 그리고 그 후부터 우리는 매년 모였다. 많지 않아도 일 년에 두세 차례 정도는 꼭.


"살아있는 게 얼마나 소중하냐. 석봉이는 아무것도 못해보고 그렇게 갔는데."


엿배가 불쑥 말했다. 연초 종로 어딘가의 호프집에서 차가운 맥주잔을 들이키더니 웃으면서 얘기했다. 나도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냥 미안했다. 살아있으면서 하고 싶은 대로 살지 않는 내가. 그리고 고마웠다. 같이 있지 않아도 우리 다섯 모두를 함께 하게 해 준 네가.


마, 우리 거기 가거들랑 시원한 욕지거리에 웃음으로 반겨주라.



Introduction of Song


빌 에반스는 여러 가지로 내게 특별한 재즈 피아니스트이다. 좋아하는 재즈 클럽의 이름이기도 하며, 재즈를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이기도 하며, 가장 좋아하는 재즈 명곡의 작곡가이다. 그는 미국에서도 상당히 인지도가 높은 대중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도 그럴만한 것이 그의 곡 대부분이 감미롭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5년 BBC 라디오에서 선정한 가장 위대한 재즈 아티스트 9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재즈에 입문하게 된다면 반드시 알 수밖에 없는 위대한 이름이다.


이번 에세이에 소개된 <We will meet again>은 그의 생전 마지막 앨범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의 생 자체가 말년으로 갈수록 불행해지는데, 그의 연인과 친형이 자살하고 그로 인해 마약 중독이 심해져 결국 합병증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 와중에 나온 <We will meet again>은 그의 친형 Harry에게 헌정된 곡이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그가 형의 죽음에 얼마나 슬픔으로 가득 찼었는지 느껴질 정도이다. 보통의 재즈 곡과 비교했을 때 곡의 연주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도 왠지 그가 너무 슬퍼 더 연주할 수 없어서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빌 에반스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른 이야기를 통해 더 해보도록 하겠다. 내가 정말 아끼는 그의 명곡들과 분위기가 다르기도 하거니와, 이번 이야기와 이 곡 외에 다른 사족을 덧붙이는 게 맞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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