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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비친눈 Feb 26. 2019

내 지금에 축배를

다섯 번째 재즈이야기: Swear!

Jazz Memory #005


눈은 감았지만 머리는 깨어있었다. 

어둠 속에 있었지만 나란 인간은 좀처럼 잠들지 않았다. 미친. 그렇게도 좋니?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원하던(원래 계약한) 집으로 이사한 첫날 밤이었다. 행여 눈을 뜨기라도 하면 왠지 불면의 밤에 시달릴 예감에 꾹 참고 버텼다. 일단 온몸에 힘을 빼보았다. 그렇게 한 몇 분만 있다 보면 잠이 훅 올 거란 걸 경험상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오라는 잠님은 안 오시고 와선 안될 잡념만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통에 결국 눈을 뜨고야 말았다. 그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손은 네댓 살 먹은 애기처럼 벌써 휴대폰으로 달려갔다. 오전 1시 30분. 아... 30분이나 버텼는데. 


방은 그래도 잘 수 있을 정도로 정돈되기나 했지 거실엔 아직 너저분하게 정리된 짐들이 한쪽 벽에 몰려있었다. 갈 곳 잃은 잡동사니들은 적당히 정해준 공간에서 어색하게 서 있었다. 야, 니들. 당분간 거기 있어. 니들 자리 멋있게 만들어줄 테니. 그런 생각을 하며 주책없이 날 일으킨 신호를 해결하려 화장실로 들어갔다. 


"우르릉. 쑤와아~~~아"


시원한 소리를 뒤로 하고 나오자 바깥 창 너머 불빛에 어스름하게 드러난 낯선 공간을 또 한 번 마주했다. 다시 봐도 낯설고 새로웠다. 이 벽엔 TV 거실장을 놓고 그 장 안에 플스와 마샬 스피커를 놔둬야겠어. 그리고 저 구석으로 나무원목으로 된 월넛 색 책상 하나 놓고, 적당한 공간에 소파 매트 같은 거 놓으면... 캬, 짜릿해! 

그냥 빨리 들어가서 얼른 잘 것이지 도파민이라도 쳐 돌았는지 지맘대로 그 광경에 상상을 AR처럼 덧입히고 있었다.


얼씨구. 안 자려고 잘도 애쓴다. 마음의 소리라도 들었는지 다시 짙은 카키색 이불 안으로 몸을 밀어 누웠다. 어휴 나 잠 다 잤구나. 미치겠네.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이미 시간은 월요일 오전 두 시에 다다랐다. 하필이면 월요일에 이러고 있니, 나님아. 책망을 하면서 어이없이 웃었다. 두 달 전의 나와 너무 비교되었달까. 다른 시공간의 같은 자아는 너무도 다른 감정 속에 살고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2018년 마지막 한 달 동안 실패의 연속이었다. 꽝손도 이런 꽝손이 없었다. 런닝맨의 이광수는 그래도 예능에서 꽝손이기라도 하지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로 무엇이든 선택을 하기만 하면 결과는 다 꽝이었다. 이직도, 이사도, 재테크도, 그리고 심지어 내 감정도 모두 다. 벼랑 끝을 붙잡고 버티던 날 마지막으로 밀어버린 건 '아쉽게도'란 단어가 들어간 이직 결과 메일이었다. 그렇지만 벼랑 끝으로 몬 건 결국 나 자신이었다. 이직을 준비하면서 그토록 경계했던 '기대'를 했고, 이사를 하면서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그저 '설마'라고 생각했다. 또 재테크를 하면서 그토록 버리려 했던 '욕심'을 버리지 못했고, 잘 알고 있었으면서 내가 가졌던 그 감정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불면에 잠 못 들던 그날 밤, 괴로움에 끝내 굴하여 무신론자인 주제에 신에게 버틸 수 있게 해 달라 간절히 빌었다. 다행히 날 아껴주는 한 개띠 형 덕분에 가까스로 정신 차리면서 그제야 깨달았다. 12월의 내 선택은 모두 '현재'를 버리고 '미래'에만 수를 두었구나. 그것도 내가 그렸던 좋기만 한 '미래'에.


이사 전날, 잡동사니를 모아둔 박스 안 종이 사이로 익숙한 글씨가 적힌 편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한 글쓰기 모임에서 2017년의 내가 2018년의 나에게 쓴 편지였다. 그리운 순간과 정겨운 얼굴들이 그려진 사진들을 거둬내고 글을 내려 읽어갔다. 유독 한 문장이 눈에 띄었다. 


'중요한 건 내 자신이 지금 행복한가 야.'


이미 나는 알고 있었구나. 내가 어리석게도 알면서 실수했구나.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두 달 동안 '지금'에 충실했던 나는 어느덧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마 앞으로도 같은 실수를 또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불행은 감기처럼 잊을만하면 찾아와 때 되면 걸릴 것이다. 그렇지만 이젠 처방법을 알기에 금방 낫게 될 거다. 빨리 나아질 것이다.


시계는 두 시를 훌쩍 넘겼다. 몸은 피곤해지는데 정신은 상쾌하다. 

빌어먹을.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이사 첫 날 기념으로 맥주 한 캔에 음악이나 듣자. 

냉장고에서 스텔라를 꺼내고 아이폰으로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노래를 틀었다. Casiopea의 'Swear!'.



Introduction of Song


카시오페아는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퓨전 재즈 밴드이며,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있는 최고참급 그룹이다. 1977년에 그룹을 결성, 79년에 첫 앨범 <Casiopea>로 데뷔했다. 유튜브나 멜론 등의 스트리밍 음원 서비스를 통해 카시오페아의 대표곡 몇 곡을 들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엇? 어디서 들어봤는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들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방송사에서 한동안 카시오페아의 곡들을 BGM으로 상당히 많이 이용했고 광고음악으로도 많이 쓰였다. 


한 때 MBC 뉴스데스크 인트로로 사용되었던 카시오페아의 'Trance Evolution'


그중 오늘 추천하는 곡은 카시오페아의 <Mint Jams> 앨범의 마지막 곡 'Swear!'이다. 도시 야경을 떠올리게 하는 느낌이 강한 곡으로, 청명한 키보드 음이 톡톡 튀는 듯한 서정적인 멜로디 라인이 인상적이다. 달리는 차 안에서 듣는다면 더욱 감흥이 새로운 곡이다. 이 곡의 매력 포인트는 드럼이 홀로 절정으로 치닫다 그치는 순간부터 관객들이 박수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8비트 전자오락 BGM 같은 키보드 솔로 부분이다. 80년대 슈퍼마리오 게임에나 나올법한 멜로디.  즐겁고 신나고 도회적인 퓨전 재즈 곡을 듣고 싶다면 반드시 강추하고 싶은 곡이다. 이와 더불어 이 곡이 수록된 카시오페아의 <Mint Jams> 앨범에는 좋은 곡들이 많다. 특히 앨범 첫 곡 'Take Me'는 'Swear!'와는 다른 느낌이지만 밤과 어울리는 곡이다. 참고로 앨범 명 <Mint Jams>는 신상품과 같은 최상의 컨디션을 의미하는 'Mint'와 즉흥 연주를 의미하는 잼 세션의 'Jam'을 합친 조어로 합치면 '최고의 연주'를 의미한다.


Casiopea의 'Take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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