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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비친눈 Feb 10. 2019

겨울밤 도시를 달리는 노래

세 번째 Pop 이야기 : Photograph

Pop Memory #003


집을 나선다. 바깥 밤공기는 더욱 차갑다. 그래서 걸음은 목적지로 향하지만 마음은 세 살배기 마냥 벌써 집으로 몸을 틀고 칭얼댄다. 평소와 달리 몸 선이 드러나는 트레이닝복을 애써 입었으니 기왕 나온 거 다녀오자 하며 내 안의 어린 자아를 토닥이며 후다닥 버스에 몸을 밀어 넣는다. 버스는 숭실대를 거쳐 상도터널로 진입한다. 상도터널 안 노란빛 가로등이 하나둘씩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갈수록 마음에는 귀찮음이 설렘으로 변해간다. 상도터널 북단 초입의 정류장에 가벼운 걸음으로 내린다. 바로 앞에 보이는 편의점에 들려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들고 한강대교로 걸어간다. 이건 뭐랄까. 마치 러닝 시작하기 전 나만의 의식 같은 거다.


한강대교 남단 끝에는 한강공원으로 내려가는 작은 길이 있다. 그 길로 여의도 방향으로 따라가면 공원 산책로 옆으로 보석처럼 빛나는 차들이 흘러가는 올림픽대로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이른다. 그곳이 내 러닝 코스의 출발점이다. 따뜻한 커피에 데워졌지만 몸은 아직 준비 되질 않았다. 간단한 몇 가지 스트레칭을 하면서 강 너머를 바라보았다. 검은 물결을 따라 출렁이는 불빛과 그 위의 흔들리지 않는 도시의 야경. 딱히 누가 의도하지 않았을 텐데 내가 본 그 어떤 그림보다도 매혹적이다. 아마도 고흐가 살았다면 이런 밤 풍경도 그려냈겠지. 더 홀리기 전에 나는 조금 깨어난 몸을 동쪽으로 밀어 서서히 움직인다.


산책로는 한강대교 남단에서부터 동작대교 남단까지 올림픽대로 바로 아래에서 춤을 추듯 엇갈리며 이어진다. 시작부터 뛰진 않는다. 조급할 것 없다. 내가 가야 할 곳은 아직 한참이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무리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아직 여유 있다. 시멘트 기둥 사이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산책로 위에는 조명 빛이 따뜻하게 내려앉아있다. 채도와 명도가 다를 뿐 길은 계속 그렇게 이어져 나간다. 한강대교 남단 아래로 이어진 굴다리 같은 길을 지나면 잠시 가로수가 헐벗은 가지를 드리우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 봄이 되면 그 나무 위에는 분홍빛 꽃잎이 몽울 지겠지. 그 어느 때보다 더 아름다울 그때를 위해 그 어느 곳보다도 더 어둠 속에 파묻힌 그곳을 재빨리 벗어났다. 이제부턴 달려야 한다. 직선으로 곧게 뻗은 길 초입에서 내 몸을 충분히 달궈준 커피 잔을 쓰레기통에 던지고 나는 달리기 시작한다.


한강 둔치 곳곳은 밤이 되면 저마다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하지만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동안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들어올 리가 없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몸은 당장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몸 전체가 달리는 그 자체에 적응해야 하고 호흡도 평소와는 달라져 한동안은 적응해야 한다. 보통은 한 3km 달리면 달리는 그 자체가 서서히 익숙해진다. 그때쯤이면 나는 이미 동작대교 남단 아래를 지나 반포대교로 향하고 있다. 그 어느 곳보다 달리기 편한 구간이다. 길은 큰 경사 없이 완만하게 이어진다. 왼편으로 펼쳐지는 야경을 바라볼 여유가 생길 즈음 서래섬이 갈대밭 사이로 나타난다. 무채색의 겨울이지만 그래도 밤에 묻힌 서래섬은 아름답다. 뒤로는 파란 불을 켠 남산 타워와 그 아래 집들과 아파트들이 만들어내는 불빛의 화려한 조화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섬은 자기가 가진 조명들로 은은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이윽고 서울의 그 어느 곳보다 밝은 빛을 발하는 새빛둥둥 섬이 다가온다.


잠수교 북단 방향

반포대교 남단. 그곳은 한강공원 그 어느 곳보다 밝고 혼잡하다. 하지만 겨울만큼은 그렇지 않다. 저 멀리 시베리아에서 온 한기를 품은 강바람은 내 뺨을 차갑게 식힌다. 그러나 20분 가까이 뛰는 동안 달궈진 몸의 열기로 강바람을 기어이 뚫고 잠수교 남단으로 들어선다. 사방이 뚫린 시멘트 동굴. 처음 이 곳을 본 소감이었다. 그 어느 곳보다 인위적이고 차가운 공간 속에서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하나하나 서울에 수놓은 풍경을 바라보며 뛰는 순간이 이 야간 한강 러닝의 클라이맥스이다. 서서히 높아지는 경사에 숨도 더 가빠지며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다리도 좀 뻐근해진다. 그래도 포기하기는 싫다. 벌써 난 절반이나 뛰었다. 그리고 추위에 굳은 몸이 이제야 풀렸다. 잠수교 언덕 정상에 다다라 남은 여정을 바라보며 마음 한 번 다지며 내려간다.


이제 경사는 없다. 그치만 그 어느 코스보다 좌우로 몸이 움직여야 한다. 강변북로를 따라 이어진 이 길은 다소 좁은 걸 제외하곤 뛰기에 좋다. 1시 방향으로 롯데월드타워가 우뚝 쏟아 있다. 이제부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보이는 그 등대를 벗 삼아 계속 동쪽으로 달려간다. 길은 강변북로를 지탱하는 기둥을 요리조리 피해 간다. 그 기둥 위에서 가로등이 조심해서 다니라며 내게 빛을 충분히 뿜어준다. 이 구간에선 버릇처럼 우측으로 고개를 돌린다. 한강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서울, 아니 대한민국의 가장 부유한 동네가 보인다. 부가 이룩한 동네를 바라보며 부를 향한 나의 욕망도 흘러가는 강물처럼 일렁인다. 다소 거칠어진다. 다시 정면을 응시하고 내가 가는 길의 끝을 바라보며 가빠진 숨을 가라앉히며 페이스를 되찾는다.


"시간 35분 xx초. 거리 7km. 평균 속도 ..."


한남대교 북단을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흐르던 음악 위로 'Nike Run Club' 앱이 내게 러닝 거리를 알려준다. 목적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음악은 좀 나른하지만 겨울의 서울 야경과 잘 어울린다. 겨울이 아니더라도 이 곳이 아니더라도 도시의 밤 풍경과 너무 잘 어울릴 거라 생각이 들었다. 와인 한 잔과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면 더욱 좋겠지.


Slow it down. Before dawn. Everything is everywhere.


잔잔하게 흐르는 노래를 들으며 어느새 나는 마지막 구간에 들어섰다. 내 머리 위로 한 편엔 강변북로가, 다른 한 편엔 경의 중앙선 위로 전철이 지나가고 있었다. 시야에 이제 옥수역이 보인다. 나는 지친 다리에 힘을 더 보태 주었다.




Introduction of Song



종종 밤의 한강변을 달린다. 러닝을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한강 야경을 좋아하는 건지 이제는 구분이 안되지만, 달리는 동안 잡념을 없애고 밤에 심취하려 듣는 음악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offonoff의 <Photograph>이다. offonoff. 왜 이제야 이 뮤지션을 알게 된 걸까. 조금이라도 늦게 알게 된 것이 아쉬울 정도로 내가 애정 하는 뮤지션 중 하나다. 누가 그러더라. 내가 새벽 감성이라고. 늘 그렇게 우울하게 사는 건 아니지만 부인할 수 없는 내 메인 감성인 건 확실하다. 그 새벽 감성에 어울리는 뮤지션, offonoff이다.


2015년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첫 앨범을 발표한 두 친구는 2년 뒤 하이그라운드를 통해 offonoff의 이름으로 첫 정규앨범 boy.를 발표했다. 지금은 문을 닫은 레이블 하이그라운드에는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이 많다. 혁오, 검정치마, 펀치넬로, 이디오테잎, 노라조. 펀치넬로와 같은 레이블이란 것도, 이 레이블의 수장이 타블로란 것도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그저 좋은 뮤지션을 알게 된 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 그렇지만 하이그라운드는 YG가 돈 안된다고 그만둬 버렸다지. 첫 정규앨범 이후 두 멤버 Colde(콜드)와 0channel(영채널빵채널)은 각자 개별 활동을 통해 지속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몸 담고 있던 레이블의 사정으로 그룹 활동이 다소 정체된 것 같아 개인적으로 아쉽다.


<Photograph>는 음악도 좋지만 뮤직비디오는 더 좋다. 뮤지션이 단 한 번도 안 나오고 스토리도 없는 단순한 영상. 그래서 좋다. 어느 한 도시의 낮과 밤, 바닷가, 도심, 공원, 지하철, 재즈바, 강변, 그런 장면 하나하나와 멜로디, 그리고 가사. 그걸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으면 그 도시에 머무는 여행자가 된 듯하다.


offonoff의 <Photograph>을 듣고 이 음악이 좋다면 그들의 다른 노래 <gold>와 <춤>을 들어보길 권한다. 조금은 다른 템포, 다른 내용일지라도 결국은 그런 생각이 든다. 이들은 밤을 노래하는구나. 크햐, 취하는구나.


offonoff, <gold>


offonoff,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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