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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비친눈 Feb 04. 2019

떠오르는 아침의 노래

첫 번째 BGM 이야기: the land song

BGM Memory #001


산은 아직 어둠과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검정의 명도만이 어디까지가 산이고 하늘인지 구분 지어 주었다. 차 안의 시계는 아직 5시 30분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벌써 산 중턱 길가로 차들이 자신의 주인들을 줄지어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사물이 침묵하는 공간에 사람들은 두터운 차림으로 산이 인간에게 내어준 길을 따라 오르고 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시간, 산에 내린 어둠 속에서 가로수 불빛만이 그 길을 안내해주었다.


산행로 초입에서 산을 향해 올려다보았다. 이 길 중간에 있다는 자그마한 절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지만 저 너머 어느 한 곳으로부터 빛이 은은하게 새어 나왔다. 저기구나. 저기 있구나. 나는 아침을 부르는 스님의 고요한 염불을 따라 어느 이름 모를 석공이 만든 돌계단을 밟으며 올라갔다. 투박한 돌계단 사이로 한편에 선 나무들이 다른 한 편으로 뿌리를 뻗어 계단 한 칸씩 이루었다. 나무는 또 돌길 위로 손을 뻗은 것 마냥 가지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이 새어나갈 때면 흔들거리는 나무와 뺨을 때리는 바람, 그 둘이 부딪히는 소리에 산이 우릴 반기는 걸까 거부하는 걸까 묘한 두려움이 일었다. 다행히 그런 마음이 일 때면 저 멀리 들려오는 스님의 낮고 안정된 음성과 청명한 목탁소리에 마음이 놓였다. 길 너머 산을 바라보았다. 그 위에 별 하나 빛나고 있었다. 


난간을 부여잡고 가파른 경사의 돌계단을 올랐다. 돌계단의 끝에는 두 바위가 나란히 서 있었다. 자연이 만든 천왕문을 지나자 평평한 길 끝 위에 절이 보였다. 잠시 길을 빌리겠다는 마음으로 고개를 세 번 꾸벅거리고 그 속으로 걸어갔다. 절로 들어서자 풍경소리가 들렸다. 분명 어둠 속에 있는데 마음이 밝아졌다. 대웅전을 지나 해가 쏟아오를 동해 쪽으로 바라보았다. 6시가 훌쩍 지났지만 여명은 아직이었다. 잠시 추위를 피하려 대웅전 문을 열자 절 특유의 향이 먼저 나를 맞이해 주었다. 냉기와 어둠을 먹은 나무 바닥 위에 방석을 깔고 앉아 부처의 안식처에 잠시 머물렀다. 법당은 수행자들로 분주했다. 그렇지만 만트라 외엔 옷이 나부끼는 소리만이 있을 뿐이었다. 백색소음 같은 그 나른한 소리에 눈이 감길 뻔한 것도 잠시, 정신 차려 휴대폰을 바라보니 시간은 7시를 지나고 있었다. 


다시 길을 나섰다. 절에서 정상까지는 약 10분 남짓 거리. 잎사귀를 잃어버린 나무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을 밟고 정상으로 향했다. 올라가는 도중 내 오른편으로 밝고 푸른 기운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렸다. 해는 아직이었지만 곧 드러날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고 있었다. 괜히 걸음이 급해졌다. 정상에는 많지 않았지만 나보다 먼저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다들 동쪽에서 뿜어 나는 기운에 얼굴들은 한쪽으로 하얗게 향했다. 


7시 20여분. 동쪽은 이미 빛으로 가득 찼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하얗고 붉은 기운이 하늘에 흘러넘쳤다. 갑자기 탄성이 터져 나왔다. 구름 한 점 없는 동쪽 하늘에 둥근 해가 서서히 떠올랐다. 하늘 가득했던 어둠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산과 들, 강, 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애국가와 함께 나오던 일출보다 장엄하고 아름다우며 바다에서 보는 일출보다도 푸르고 성스러웠다. 여기저기 사람들은 해를 보며 소원을 빌고 있었고 손을 모아 연신 몸을 숙여 댔다. 나는 소원을 빌지는 않았다. 그러나 해가 떠오를수록 따뜻하고 기운 넘치는 지금 이 마음을 계속 간직할 수 있길 바랬다. 그 어떤 어두운 순간에도 아침을 기다릴 수 있는 그 마음을. 




Introduction of Song
the land song - music for Artelligent City


비록 음력 설이지만,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으로 이 곡을 떠올렸다. 우리에게 <Merry Christmas Mr. Lawrence>로 더 잘 알려진 세계적인 뮤지션 류이치 사카모토의 앨범 'CHASM'의 수록곡 <the land song - music for Artelligent City>이다. 사실 그가 왜 세계적인 뮤지션인지를 체감한 건 작년 여름 서울 남산 중턱에 위치한 예쁜 복합 문화공간 피크닉에서 열린 그의 전시회 때문이었다. 예술은 1도 잘 모르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나로서 한 뮤지션이 그것도 일본인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다른 나라의 전시 공간에서 보여줄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언가 대단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데이빗 보위와 키스신은 좀 놀랬... 


이미 윗글에서 눈치채셨겠지만, 류이치 사카모토는 그리 잘 알진 못한다. 그래서 멀 언급하기도 조심스럽다. 그러면 오늘 추천하는 곡은 어떻게 알았냐 하면 그건 순전히 음악을 '채집'하는 내 버릇 때문이다. 거리를 지나가다도, 술을 한 잔 하다가도, 혹은 TV를 보다가도 귀에 꽂히는 음악이 들리면 그 음악의 제목을 알아내고야 마는 습관이 있다. 이 노래도 순전히 그 때문에 알게 된 음악이다. 유명하지 않은 KFT 광고 중 하나에 이 곡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우연히 TV를 보다 꽂혀 기어코 제목을 알아내고 말았었다. 이게 벌써 2004년이다. 그러고 한동안 듣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새해가 되면 이 음악이 귓가에 맴돈다. 나만 그래요. 


류이치 사카모토의 곡은 꽤나 많이 알려진 편인데, 알려진 곡들에 비해 이 곡은 꽤나 색다르게도 전자음악에 전통 악기를 결합한 퓨전음악이다. 강렬하게 음악을 가로지르는 피리 소리에 잔잔히 멜로디를 입혀주는 피아노 소리, 그리고 비트 있는 전자음은 전통 악기를 사용했음에도 현대적이며 도회적으로 느껴진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게 된 것인데, 류이치 사카모토는 전통 음악에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다양한 장르에 관심 있어 그의 작품들이 앨범마다 다양한 색체를 띄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전자음악, 환경음악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피크닉에서의 전시회에 나온 음악들이 죄다 그런 쪽이었다. 그래서 난 도통 이해를 못했다. ㅡㅡ; 


마지막으로 그래도 내가 아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여러 곡 중 한 곡을 덧붙인다. 이 곡이 수록된 영화는 모르더라도 너무 유명한 그의 곡 <Merry Christmas Mr. Lawrence> 이다. 

<Merry Christmas Mr. Lawlenc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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