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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비친눈 May 02. 2019

느긋한 히피의 휴일

여섯 번째 Pop 이야기: 휴일(Lazy)

Pop Memory#006


"니는 참 느긋해서 좋겠다. 엄만 뉴스에 스리랑카만 나오면 가슴에 불이나 죽겠는데!!! 끊어라!"


이미 짐작했지만 수화기 너머 엄마는 불같이 화만 내시고는 전화를 끊어 버리셨다. 자기 할 말만 하신 채. '부모니까 이해는 하지만 내 얘기는 들어보기나 하시지, 참...'. 고개를 돌려 테라스 너머로 보이는 엘라의 풍경을 바라봤다. 스리랑카에 오기 전 제일 관심 가지 않았던 이 시골마을의 전경이 마음에 평안을 이내 안겨주었다. 테라스 앞 선베드에 누워 아이패드를 집어 들고 e북을 켰다. 파올로 코엘료의 '히피'? 나랑 정말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데, 지금의 나한텐 어쩌면 어울릴지도 모르겠구나. 어차피 한낮 적도의 햇빛은 따갑다. 저 내리쬐는 햇살에 내 여린 피부로 저항하느니 시원한 산 공기에 책이나 읽고 놈이 저 물때쯤 슬그머니 나가련다. 그런 마음을 먹고 이번 달에는 나가지도 못할 독서모임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숙소 주변의 풍경 (Ella, Sri Lanka)


엘라의 골짜기 사이로 부는 시원한 산바람이 산등성이 아래로 수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로 지나가면 춤을 추듯 나뭇잎들이 사르르 소리 내며 흔들린다. 그에 나뭇잎이 머금고 있던 풀내음도 지나가는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간다. 책을 읽는 동안 이따금 고개를 들면 저 멀리 맞은편에 우뚝 서있는 산이 보인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면 IMAX 화면을 볼 때 느껴지는 이질적인 현실감이 느껴진다. 다시 고개를 쑥여 책을 들여다본다. 해가 엘라의 서쪽으로 상당히 치우칠 무렵 느긋한 나의 독서도 끝났다. 출국 면세점에서 사 온 바카디 모히토를 냉장고에서 꺼내 한 잔 시원하게 들이킨다.


'히피'.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나를 아는 대부분의 지인이 동의할 것이다. 히피의 사전적 정의를 찬찬히 뜯어보면 절로 수긍이 된다.


기성의 가치관ㆍ제도ㆍ사회적 관습을 부정하고, 인간성의 회복ㆍ자연과의 직접적인 교감 따위를 주장하며 자유로운 생활 양식을 추구하는 젊은이들.                                                                                                                                                                                                            <출처: 네이버 어학사전>


단어 정의의 세 부분이 나랑 맞지 않다.

'기성의 가치관ㆍ제도ㆍ사회적 관습을 부정하고' : 부정한 적 없다. 나는 돈이 돈을 버는 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이용해 어떻게 하면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을까만 궁리한다.

'자유로운 생활양식을 추구하는' : 남들과 거의 비슷하다. 생활이 조금 더 자유롭다 할 수 있겠으나 그건 내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자유이다.

'젊은이들' : 젊지 않다. 시대가 바뀌어 나이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지만 그렇지 않다. 비루한 신체가 그걸 내게 알려주니까.


그런데 방금 읽은 소설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보게. 젊은 양반, 수피는 늘 현재의 순간을 산다오. 내일이란 우리의 사전에는 없단 말이오.

어물쩡하게 넘어갔지만 이 곳에 오기 전 왜 스리랑카에 가냐, 테러가 났는데 거기 가도 괜찮겠냐 라는 사람들의 물음에 대한 진실된 답변이다. 올해 첫날 나는 지금의 나를 위해 살기로 마음먹었다. 미래를 위해 지금을 더 이상 희생하기는 싫었기에 미래에 모든 걸 걸었던 과거의 나와의 작별했다. 바카디 한 모금 머금자 입 안에 라임향과 알코올이 감돈다. 그래 그런 게 히피라면 지금의 나는 히피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난 지금 이 순간에 그저 머물고 있으니.



Introduction of Song
EXO-CBX(첸백시), 휴일(Lazy)

남돌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관심이 없다는 표현이 아마 더 정확한 것 같다. 그래도 매일 쏟아지는 노래의 홍수 속에서 좋은 노래가 들리면 버릇처럼 항상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해두는데 열 곡 중 한 두곡 정도는 항상 남자 아이돌 노래였다. 저장해둔 음악들은 한참을 듣다 나의 관심에서 멀어지면 한겨울 김치 장독대에 익어가는 김치처럼 푹 어딘가에 묵혀두는데 이 노래도 그중 하나였다.


콜롬보 반다라나이케 국제공항에서 유심을 구입하고 버릇처럼 YouTube 앱을 열었는데 '으잉?' 되질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테러 사태로 인한 유언비어 확신을 방지하기 위해 YouTube, Facebook 같은 SNS 접속을 아예 한동안 차단한 것이었다. 그걸 알 리가 없었던 나는 담배를 애타게 찾는 흡연가처럼 음악을 들을 대안을 찾으려 애썼다. 그 대안이 '네이버 뮤직'이었고 거기 플레이리스트 중 하나에 이 노래가 묵혀 있었다. 닷새를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드디어 사흘 동안 쉬어갈 엘라의 숙소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테라스 앞으로 나오자 드넓게 펼쳐진 엘라 전경에 압도되었다. 선베드에 누워 그저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고 싶다는 욕망이 일었다. '네이버 음악' 앱을 열어 음악을 틀고 젊지 않은 몸뚱아리를 선베드에 눕혔다. 이 노래가 흘러나왔고 노래 가사처럼 이 순간 속에 머무르고 싶어 졌다.



이번 스리랑카 여행의 북마크는 EXO-CBX의 '휴일(Lazy)'이다. 예쁜 풍경에 좋은 음악으로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앞에 언급했다시피 EXO를 잘 모르지만 EXO의 음악 중에 좋아하는 노래는 '휴일'외에도 몇몇 있다. 추천할 노래는 두 곡이다. 하나는 같은 앨범에 수록된 'Playdate', 또 다른 하나는 'Tender Love'이다. 원래 EXO 팬이라면 당연히 알 노래들이지만 나처럼 남돌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두 노래를 추가로 추천해주고 싶다. (링크는 'Playdate'만 추가하였다.)


EXO-CBX(첸백시), Play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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