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만에 우연히

떠나는 청춘

by 오순

그날 그렇게 우리는 십 년 만에 우연히 마주쳤다.

출근길 지하철을 기다리는 와중에도 열심히 졸고 있던 그녀는 누군가의 기척에 귀찮은 듯 게슴츠레 겨우 눈을 떴다. 시간이 멈춘 듯 서서히 인식되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어색하게 그녀의 미소가 일그러졌다. 미소와 함께 서서히 의식이 돌아오면서 그녀는 말했다.

“어~ 어어~ 형”

그녀는 어리버리 ‘어어~ ’하며 더듬거리다 마지막 ‘형’이란 호칭은 부르기도 어색하게 꼬리를 내렸다.


그녀의 학창 시절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선배한테 형이라 불렀었다. 십 년 전의 그때의 그녀가 아니건만 형이란 말이 정말 오랜만에 무심결에 튀어나온 것이다. 자기의 소리에 놀란 듯 그녀는 현재의 자신의 상황을 알아차리고 입을 다문 것이다. 그리 반가운 사이도 아니었건만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혼자만의 반가움의 표시도 한층 어색하였다.


그녀의 반색에 약간의 거리를 두는 그 사람을 보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내가 뭐 자기를 어떻게 해 보려는 수작이라도 부릴까 봐 겁나는 것인가! 저 거리두기는 뭐야? 어이가 없네. 좋다고 따라다니며 대시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불똥이라도 튈까 봐 겁내는 표정은 뭐지?’


그 사람의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거리두기에 그녀는 반가운 표정을 지워내야 했다.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든다. 정말 오랜만이라서 반가운 것 외에 다른 마음은 일도 없었는데 반가워하면 안 될 것 같은 그 사람의 분위기는 뭐란 말인가. 이전에 원수진 사이도 아니고 사귄 것도 아니고 잠시 그 사람이 그녀에게 호감을 가져서 그 사람의 고백 비슷한 것을 받았고 그녀는 나쁘지 않게 거절했던 것 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 그녀가 너무 천진했나? 누가 알면 오해할 일이라도 있었으면 덜 억울하겠는데 뭔가 이상하네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하필 이런 때 만나다니. 풋풋했던 그때와 천양지차 아줌마가 되어 시든 채소처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화장도 못하고 옷도 대충 입었는데…….

“~으으~” 헤아릴 수도 없는 생각들이 그녀의 마음속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억지 미소를 지었다. 서서까지 졸고 있다가 눈도 제대로 못 뜨고 그 사람을 바라본 것이 더 창피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없었던 것도 창피했다. 그 사람은 든든한 직장인이 되어 있었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열심히 출근하고 있었다. 그 사람의 그녀를 향한 애잔한 미소가 더 자존심이 상했다. 아마도 피곤에 절은 그녀가 안 되어 보였나 보다.


십 년 전 그때는 그의 관심을 알면서도 한 사람의 여자만 되고 싶지 않아 도도하게 거절하며 선후배로서 당당했었는데 이렇게 만날 줄이야. 짤막한 만남 뒤에 출근길 방향이 서로 달라 잘 살라며 헤어졌다. 서로 연락처도 묻지 않았다. 서로가 각각 짊어진 어깨가 무거워 보여 애잔해 보일 정도로 십 년 전 그들은 풋풋했었다. 그들은 지금의 시들어 가는 모습을 더 지켜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 뒤로 그녀는 한동안 어디서든 졸지 않으려 애를 썼다. 추레하게 졸고 있으면 어디선가 그 사람이 지켜볼 것 같았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 그녀는 피곤하면 누가 보던 말든 끄덕끄덕 졸고 있는 중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중년의 그녀는 그렇게 청춘을 떠나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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