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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배고픔

채우다

by 오순

배는 고프지 않다.

속이 허하다.

뭔가 먹고 싶다.

가짜 배고픔이리라.


망설이다 작은 컵라면에 달랑 무김치를 곁들여 먹는다.

적당히 맛이 든 달랑 무가 아삭아삭하여 뜨거운 라면과 잘 어우러져 콧물까지 훌쩍이며 먹는다.

허했던 마음이 채워지고 냉방비 아끼느라 조금 추웠던 몸이 녹는다.


작은 양의 라면 하나와 맛깔스러운 김치 한쪽이 허한 마음을 충분히 달래주었다.

때론 책으로 때론 음악으로 때론 영화나 드라마로 허한 마음을 채우기도 하고 때론 친구나 지인들과의 만남으로 허한 마음을 채우기도 하지만 오늘은 먹는 것으로 채웠다.

허한 마음을 외부에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안에서 해결하니 한결 뿌듯하다.


외롭다 심심하다 마음이 느껴지면 더 우울하게 가라앉기 전에 털어내고 싶은 마음이 성마르게 연락처를 찾는다. 누구에게 연락하면 뒤끝이 덜 할까 싶어 이리저리 고민하다 보면 선택지가 거의 없다. 그래도 토해내고 싶은 마음에 누군가를 희생타로 선택한다.


아닌 척 괜찮은 척 포장하고 나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무에 그리 급한 용무라도 있는 양, 허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말 저말 하다 보면 일방적인 쏟아내기가 된다.


돌아서서 민폐임을 깨닫고 자책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감정 쓰레기를 아닌 척 투척해 버린 자신을 탓하며 좋은 시간이었던 것처럼 아쉬운 척 작별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천근만근이다. 집에 와서 으~ 컨디션 좋지 않을 때 나가지 말아야 했어를 반복하며 덮고 있는 이불을 걷어차기 바쁘다.


다음에는 그 친구의 쓰레기통이 되어 주어야지 그렇게라도 미안함을 덜어내려 마음먹지만 얼마 가지 않아 까마득하게 잊고 내 말만 쏟아내는 자신을 보게 된다. 그 친구가 다시 보기 싫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설마 점심도 사고 차도 샀는데 쩨쩨하게 오래된 정을 거부하겠나, 내가 그리 큰 피해를 준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며 자신을 변명하고 있다.


오늘은 이런 도돌이표 후회를 하지 않게 되어 후유증이 없다.

얼마나 개운하던지 컵라면이 얼마나 있나 더 주문해 놓아야 하나 하며 세어본다.

나를 구한 고마운 라면이다.


흡족한 마음으로 따끈한 매트에 누워 며칠 전 구입해 놓은 책을 펼쳐든다.

오분도 되지 않아 눈 껴 풀이 내려 않는다.

이대로 자면 안 되는데...... 먹고 바로 자면 소가 된다 했는데...... 오늘 하루만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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