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층 여자

청소

by 오순

계단을 올라오다 마주쳤다. 아마도 딸이 말하였던 우리 집 바로 아래층의 새로운 주인여자인 것 같다.

그 흔한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이어서 4층까지 올라가면 숨이 턱에 찬다. 한층 더 올라가는 것이 1층에서 2층 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운동도 되고 익숙해지면 근력이 생겨 괜찮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가파른 느낌이다. 이건 운동과는 다른 것 같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다른 곳보다 넓은 곳을 싸게 임대할 수 있었다. 꼭대기층이라 독립적인 느낌도 좋다. 이런저런 조건 때문에 거의 십 년 가까이 이사하지 않고 사는 중이다. 그러는 와중에 주인도 바뀌었다. 그동안 건물 내 다른 집들도 주인이 바뀌고 임대자들도 많이 바뀌었다. 이젠 내가 이 건물에 장기 거주자가 되었다.


아래층 여자는 동글동글한 얼굴에 눈코입이 알맞은 크기로 배치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귀여운 얼굴 상이다. 2층 계단에서 마주쳤는데 사람을 꺼리지 않는 사람인지 먼저 인사를 건넨다. 스스럼없이 자기가 한 계단 청소를 자랑한다. 요즘 들어 계단이 좀 반짝거린다 싶었는데 그녀 덕이었나 보다.


자기가 치약으로 난간들을 일일이 닦아서 새것처럼 반짝인다며 흡족해한다. 그동안 계단만 청소하는 것으로 저렴하게 외부에 맡기고 있었다. 그전에도 그리 지저분하지는 않았다 싶었는데 연신 그 여자는 더러워서 자기가 하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 와서 보라고 까지 한다.


계속 올라가려 하는데 자기는 4층에 이사 올 아들네의 엄마라 한다. 아들이 결혼해서 들어오는데 아파트가 아닌 빌라를 사줘서 미안해서 자신이 손수 리모델링을 한 달째 하고 있다고 한다. 새로 짓는 것도 아닌데 한 달씩이나 할 리모델링을 하나 싶다. 들어와서 구경해도 된다며 문이 열려 있으니 보라고 한다.


청소를 하던 것 팽개치고 같이 올라와 집구경을 시킨다. 거기서 거기인 구조라 문 앞에서 대충 보려 하니 신발 벗고 들어와서 보란다. 욕실을 엄청 공들였다며 보여준다. 재료도 잘 모르고 집에 대한 치장 같은 것 관심 없어서 좋네요 하고 호응만 해 주었다. 아예 베란다와 방까지 보여준다.


이 빌라는 아래층부터 2개의 호수가 나란히 있다가 4층에 1개의 호수로 줄어든다. 나머지 1개의 호수 영역에 마당이 들어서 있다. 그래서 저번에 임대자는 아이들이 있는 사람이었고 거기에 야외 풀장을 만들었었다. 그곳을 다 치우고 직접 방수페인트까지 칠했다며 뿌듯해한다. 몸으로 하는 것을 즐기는 스타일인가 보다.


멈출 줄 모르는 수다에 괜히 들어왔다 후회하고 있는데 5층도 구경하고 싶다고 가보자고 한다. 할 수 없이 집을 오픈했다. 계단 청소부가 요금을 올려달라 해서 관두게 하고 자신이 당분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들이 싫어해서 계속할 수 없을 것이라며 나보고 해보라 한다. 간단하다고 하면서 대걸레랑 빗자루를 주겠다 한다.


몸으로 하는 일은 전혀 하지도 못하는 데다가 나이가 들어 허리도 좋지 않아서 하지 않겠다 하였다. 듣지도 않고 계속 용돈도 벌고 그까짓 거 대걸레로 쓱쓱 닦으면 순식간이라며 계속하라고 한다. 하도 자기 말만 하길래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말았다. 만일 어쩌다 할 수 없이 내가 청소를 맡는다 해도 그녀는 수시로 와서 간섭할 것이고 팔 걷어붙이고 직접 청소할 사람이다. 그녀의 말을 멈추게 할 자신이 없다.


이야기를 끝맺지 못하는 스타일인가 보다. 아래층에서 그녀의 남편이 소리 지른다. 그제야 부리나케 내려간다. 푼수라고 해야 하나 착하다고 해야 하나. 세상물정 모르는 순박한 아낙이라고 해야 하나. 그 사이에 자기 집 친정 동생들이 이 동네에 살고 형제자매가 몇이며 자식이야기며 남편이야기며 자신의 직업까지 나열하고 갔다.


주로 상대방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스타일이다.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오며 가며 만나고 싶지 않았다. 붙잡히면 한두 시간 떠들 것이 분명하다. 계단 청소하러 오면 잘 피해 가야지. 며칠 뒤 그녀가 누군가를 붙잡고 수다하는 소리가 건물 밖에서 들려온다. 따로 피할 필요도 없었다.


수다하고 몸 쓰고 하는 것이 재미있는 사람을 가까이서 보니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될 수 있으면 모르는 사람과는 대화를 하지 않는 내향형이다. 아마도 외향형인 게 분명한 그녀의 수다는 너무 길어서 듣고 있기 힘들다. 나중에 이불킥 하며 후회하지 않으려고 지인들과도 말을 조심하는 편이라 사적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 사적인 것을 떠벌리는 그녀를 보며 참 단순하고 행복하게 사는구나 싶었다.


한 달 정도 건물을 나설 때면 좌우앞뒤를 살피며 그녀가 있나 없나 살폈다.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어 관뒀다. 지나가는 길에 사람을 잘 보지 않는 편이라 누군가 아는 체하지 않으면 스쳐지나고 만다. 그것이 그 여자를 삐지게 했나 보다. 건물 밖으로 나오는데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있다.


어디서 봤지? 잘못 봤나? 고개를 갸웃하는데 그 사람이 아는 척을 하지 않아 모르는 사람인가 했다.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데 그 사람이 아래층 여자라는 것이 갑자기 인식되었다. 급하게 인사를 했는데 모른 척 받지 않는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굳어 있다. 알면서 나도 너를 무시하겠다는 표정이 가득하다. 음, 앞으로 인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잖아. 서로 모른 척하자는 것이네. 차라리 잘됐다. 이리저리 살피지 않아도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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