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무더위에 모든 것이 조용하다

혼자만의 수다

by 오순

오늘도 무덥다. 햇볕까지 쨍쨍해서 어제보다 더 덥다. 37도까지 간다 하니체감온도는 39도를 넘어설 것 같다. 무더위에 모든 것이 조용하다. 수영만 하고 집에서 에어컨 가동하고 작업을 해야겠다. 어디를 나가는 것이 오히려 더 산만함을 부른다. 처음엔 루틴을 만들기 위해 도서관카페나 공원카페에 가서 작업을 했다. 이젠 집에서도 좀 가능하다. 더 깊이 집중하기 위해서는 집이 더 낫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날도 더운데 이것저것 챙겨 들고 가자면 무거운 가방에 짓눌려 땀이 흐른다.


더운데 반려묘가 의자를 반이나 차지하고 비켜주지 않는다. 둘이 경쟁하듯 내 엉덩이는 의자 끄트머리에 걸쳐 있다. 그럼에도 좁다고 녀석은 꿈틀대며 몸으로 내 엉덩이를 밀어내고 있다. 의자를 고수하겠다는 뜻인가 보다. 다른 때 같으면 내가 앉자마자 다른 곳으로 이동하던데 버티는 것을 보니 양보해야겠다. 양보라기보다는 어차피 수영하러 나가야 되는데 양보로 생색을 내본다. 너 다해라 하고 십분 정도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았다.


오늘도 결과물 없는 작업을 꾸준히 해야 하겠지 하며 책상 앞에 앉으니 한숨이 나온다. 밖은 벌써 33도에 햇빛이 찬란하다. 뜨거운 태양아래 모든 것들이 조용하다. 햇빛은 빛나기보다 눈을 찌르듯 파고드는 땡볕이다. 에어컨을 두 시간 작동하고 한 시간 쉬고 다시 작동했다. 켜면 춥고 끄면 무덥다. 왜 이렇게 작업하기 싫은지 모르겠다. 작업이 싫은 게 아니라 집중하는 게 싫은 것 같다. 그냥 늘어져 있고만 싶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평영연습을 하다 보면 누군가 꼭 발목을 건든다. 처음엔 내가 너무 느려서 그런가 했다. 그런데 자꾸 보니 그녀도 엄청 느리다. 본인은 그것을 알지 못하는 듯하다. 레인 중간에 새치기를 한다. 출발선에서 기다려도 새치기를 한다. 배영을 주로 하는 그녀는 새치기하면서 머리를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여서 쳐다보며 한다. 그 기울임이 양해를 원하는 제스처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은 그녀의 습성이었다. 왜 쳐다보는지는 모르겠지만 매번 새치기하니 그 얼굴이 보기 싫다.


끝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서 턴을 하는 스타일이라 도달지점에서 발목을 잡을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꼭 터치를 하고 간다. 자신이 빠르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저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수영하면서 상대방과 접촉되는 것은 교통사고처럼 긴장되는 것이기에 불쾌해진다. 이제 누군가 발목을 건드려도 또 그녀구나 싶어서 신경 쓰지 않고 수영하려 하지만 놀라긴 한다. 대부분 의도적으로 상대를 터치하기보다는 중간에 턴 할 수 있으면 하고 아니면 제자리에서 수영하며 기다리거나 한다. 그래도 그녀는 매번 한두 번은 꼭 터치를 한다.


초급레인에서 수영은 거의 안 하고 중간 지점에서 그녀는 걷기를 한다. 왜 걷기를 하는지 알 수는 없으나 수영이 미숙한 초급자들에게는 엄청 신경 쓰이는 일이다. 자신이 알아서 피한다 하지만 어떤 때는 접촉되기도 하고 가까이서 그녀가 보이면 엄청 긴장되기도 하여 나중에는 왜 저러고 있는 그녀를 제지하지 않는지 짜증이 났다. 그녀는 자신이 수영자가 오면 비켜주기 때문에 엄청 배려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오늘도 여전히 평영은 속도가 나지를 않는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교정해 가며 하고 있다. 하긴 힘이 약한 나로서는 장기전으로 가야 한다. 아마 한 달은 꼬박 평영을 연습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속도가 조금씩 생길 것이다. 지금도 사실은 조금씩 속도가 나고 있는데 욕심을 내자니 더디고 속도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욕심내지 말고 운동이라 생각하며 내 페이스대로 가자. 사람들이 자꾸만 간섭해서 좀 방해가 되지만 그냥 자극제로 삼아서 힘을 내자.


작업에 집중이 안 되어 우간다 선교에 대한 다큐를 보았다. 미국 여자가 우간다에 가서 기독교를 선교하면서 빈민들을 돕는 이야기이다. 거기서 생기는 부작용과 그것을 이용한 더 큰 부작용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보면서 욕을 엄청 했다. 답답해서 그리고 안타까워서 욕이 절로 나온다. 엄청 공감하여 흥분하고 있었다. SNS가 참 많은 일을 하지만 더 많이 좋지 않은 일에 이용당하는 것을 보여준다.


객관적인 정보와 함께 각자의 입장을 보여주니 보는 우리야 판단하기 수월했지만 만일 당사자이거나 그 사건에 소속된 사람이었다면 객관성을 잃고 판단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찌 보면 나의 욕도 부당한 것이라 미안해진다.


간호대학을 갓 졸업하고 선교하러 갔던 여자가 시작을 했지만 다른 이들이 그것을 돈벌이로 이용했다. 아마도 홈스쿨링으로 고교졸업한 주인공 선교자가 전문적 교육과 훈련을 받은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고 존중하지 않았다 하여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일을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만일 진정한 선교인이었다면 그 팀이 이루어낸 공적 때문이라도 끝까지 남아 주인공을 설득하거나 싸워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존심 대결이 진짜 원인이 아니었나 의심된다. 그리고 그 사건을 이용하여 생긴 모임이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양 SNS에서 폭언과 근거 없는 말들을 쏟아내며 주인공을 위협하게 된다. 말도 안 되는 소송을 하며 지원금을 받아 횡령하는 모임이 되었다. 초심을 잃은 이기주의가 더 많은 희생자를 만든 것 같다. 결국 돈이 문제였고 또 자존심 문제로 진정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나 몰라라 한 것이다.


클래식을 유튜브로 틀었는데 머리가 아프다. 역시나 난 한 가지밖에 못하는 것 같다. 음악을 들으려면 음악만 듣고 작업을 하려면 작업만 해야 된다. 두 가지를 섞어서 영감을 받으며 하지 못한다. 음악을 끄니 조용하니 좋다.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만 들린다. 음악을 틀면 집중에 방해가 된다. 어떤 이는 음악 들으며 작업을 한다는 데 난 잘 듣다가도 작업 들어가면 음악이 소음이 되어 방해가 된다.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이니 나한테 맞는 것을 찾아야겠다.


건물 모서리에 참새 세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귀엽다. 짹짹거리는 것이 똘망똘망 움직이고 있다. 생명이 참 신기하다. 거실 유리창 너머 베란다 전면창으로 내다보이는 밖의 풍경이다. 참새 서너 마리가 더 날아와 합세하더니 모두들 어디론가 날아간다. 참새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저렇게 계속 꼬므락꼬므락 움직이니 배고프겠다. 엄청 먹어야 할 것 같다.


움직임이 적은 나는 조금만 먹어야 되는데 항상 많이 먹는다. 반려묘는 움직임이 나보다 더 적으니 적게 먹는다. 현명한 놈이다. 스스로 식탐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많이 먹는 것 보면 그것도 식탐이 아닌가 싶다. 사실과는 상관없이 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니라고 믿게 된다. 거짓인데 거짓인 줄 모른다. 참인 줄 안다. 자기가 자신을 제일 잘 속이는 것 같다.


참새들이 모여서 짹짹대다가 한꺼번에 날아가는 것을 보니 친구를 만나고 싶다. 참새들은 아무 때나 날아가 합류하면 되는데 사람은 미리 약속을 정하고 준비하고 나가야 합류할 수 있다. 번거로워져 만나고 싶은 마음을 밀어내버리고 혼자 영화를 본다. 시간은 땜빵이 되었지만 외롭기는 더하다. 약을 먹어서 그런지 식곤증인지 졸리다. 아니면 작업하기 싫어 핑계 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주어졌는데 자꾸만 딴짓을 하며 집중하지 않는다.


캄캄한 밤에는 참새들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 우리 사람처럼 보금자리를 찾아가 잠을 자는 것일까. 참새는 야행성이 아닌 주행성인가 보다. 저녁 먹으러 간 것일까. 잠을 자러 간 것일까. 참새가 새벽 일찍 짹짹거리는 것을 보면 일찍 자서 일찍 일어나는 것일까. 사람처럼 밤새도록 꼬박 자는 것일까.


오늘도 집중하여 작업을 하지 못하고 보낼 것 같다. 벌써 졸리다. 한두 시간 뒤에 자야 되는데 저녁밥 먹은 지 한 시간 반 밖에 되지 않았다. 뉴스에 어디선가 에어컨을 계속 가동하여 실외기가 펑 터졌다 한다. 우리 실외기는 옥상에서 땡볕에 있는데 에어컨 가동하지 않아도 햇볕에 녹아내리겠다. 에어컨을 중간중간 한 시간씩 끈다. 춥기도 하고 기계도 쉬어야 하기에. 확실히 오늘은 무지 더운가 보다. 에어컨을 네 시간이나 가동했는데도 춥지가 않고 적당하다 느껴지니 말이다. 한두 시간만 가동한 줄 알았다. 끄고 한 시간 뒤에 잠자기 전 한두 시간 가동하고 자야겠다.


이럭저럭 하다 보니 어느 사이 밖이 캄캄해졌다. 해가 완전히 졌나 보다. 캄캄해지기 전에는 야행성이라면 이제부터가 활동시간이라 길다고 느껴질지 몰라도 주행성인 내겐 밤은 너무 짧다. 잠깐 자고 일어나면 아침이 되어 있다. 숫자상으로는 비슷한 시간일지라도 활동시간대에 따라 시간의 길이가 달라지고 있다. 시간이 주어져도 집중하지 못하면서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시간계산을 하고 있는 내가 어이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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