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별

자연의 위력

by 오순

새벽에 눈을 뜨니 열린 창문으로 새벽별이 몇 개 보인다. 그중 유난히 큰 별이 보인다. 별 같지가 않다. 인공위성일까. 비행기일까. 달은 아니다. 꼭 나를 감시하듯 번쩍인다. 잠자리에 그대로 누워서 핸드폰으로 찍어본다. 그러고 보니 밤하늘 별을 본 것이 얼마나 오래되었나 싶다. 이리 오랜만에 저녁별도 아닌 새벽별을 보게 되다니. 어린 시절 저녁 먹고 평상에 누워 모깃불 피워놓고 부채질해 주는 어머니 옆에 누워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헤아렸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새소리가 청명하게 들린다. 새벽 4시이다. 더 자고 싶은 데 잠은 이미 달아나고 잡생각들이 밀려든다. 출근해야 되었다면 아마 알람까지 끄며 더 자고 있었을 것이다. 낮 시간이 여유로운 백수이기에 잠시간에 매달리지 않는 것인지 일찍도 눈이 떠졌다. 어제저녁부터 지금까지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다. 기온은 여전히 비슷하지만 짓누르는 더위가 한발 물러난 느낌이다.


바람 한 점이 큰 차이를 만들고 있다. 아주 숨 막히게 질척이며 달라붙던 찜통더위가 바람에 어딘가로 실려간 것일까. 끝 간 데를 모를 곳으로 떨어져 내리다가도 사소한 무엇 하나에 엉킨 실타래 풀리듯 풀어내버리는 사람의 감정 같다. 언제 그리 더웠나 싶게 시원해지니 무더위가 실감 나지 않는다. 그러다 또다시 무더위가 시작되겠지만 시원한 바람을 맞는 순간 잠시 잊히는 것이 신기하다.


정말 물러나지 않을 것처럼 치열하게 더웠다가도 바람 한 점에 흩어지는 구름처럼 물러서는 무더위에게 바람은 천적일까 동료일까. 무더위로 인해 집안에만 거주하여 삶의 공간이 작아지고 있었는데 바람으로 인해 공원에 가고 싶어진다. 거센 바람은 한줄기 햇살로 인해 온기를 전해 주듯 계절에 따라 해와 바람의 역할이 다르다. 해와 바람은 항상 그대로 존재하지만 사람이 느끼는 체감에 따라 존재감의 순위가 변하고 있다.


자연의 관점이 아닌 사람의 관점으로 세상을 내다보고 있다.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그대로 일까. 더워 죽겠다 추워 죽겠다 하는 말을 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일까. 거부감 없이 당연하다 생각하면 같은 고통인데도 견딜 만 해지는 것이 자연적 관점일까. 여름이니 당연히 덥고 태풍의 영향을 받았으니 당연히 찜통이라 생각하면 견딜 만 해질까. 인간의 관점에서 더운 것은 싫어 못 견디겠어하면 그때부터 조금만 더워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뒤따른다.


하늘을 올려다볼 평상도 없고 산들바람도 없다. 문과 창문을 꼭꼭 닫고 에어컨을 가동해 인공적인 시원함에 젖어 있다. 밖에 나가기가 겁이 난다. 조금만 땀이 나도 숨 막히게 덥다고 느껴진다. 바로 버튼을 누른다. 창문 여닫는 게 귀찮아서 에어컨을 잠깐 꺼도 환기를 시키지 않는다. 밖의 온기와 안의 냉기를 교체하기가 싫다. 보이지는 않지만 모두들 각자만의 방법으로 더위를 견뎌내고 있을 것이다.


앞 건물 야외베란다 건조대에 빨래를 넣어놓은 것이 보인다. 빨래를 말리기보다는 삶는 것 같다. 그늘이 있어도 시원해 보이지 않는다. 건물 사이 작은 공간에 있는 나무 한그루가 간신히 더위를 견디고 있다. 나뭇잎 하나 움직이지 않고 있다. 바깥쪽에 나뭇잎들이 안쪽에 그늘을 만들어줘 더위를 버티는 것일까.


창밖을 바라보니 더위만 느껴진다. 더위 속에 모든 것들이 정지된 듯 움직임 없이 고요하다. 모두가 각자만의 공간에서 침묵수행을 하고 있는 것일까. 길가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간 것일까. 나처럼 집안에 콕 처박혀 있는 것일까. 아니면 피서를 간 것일까. 간혹 자동차 한 대 들어온다. 나뭇가지가 잘게 잠깐 흔들린다. 비둘기 한 마리 그늘진 건물 난간으로 날아든다. 자연이 무더위가 세상을 휘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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