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지다

최소한의 움직임과 최소한의 생각

by 오순

햇볕이 뜨겁다. 모든 것들을 꼼짝 못 하게 한다.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엄청난 열기를 감당해야 한다. 제자리에서 느끼는 코앞의 공기와 한 발자국 나서서 느끼는 공기는 온도차가 심하다. 같은 공간인데 다른 공간처럼 열감이 심하다.


양산을 쓰고 가도 양산이 데워져 양산아래까지 열기가 전해진다. 양산이 그나마 그늘이라고 차단을 해주지만 열기는 차단할 수 없어 온찜질을 당하고 있다. 그렇게 달구어진 얼굴과 열기로 가득 찬 몸을 에어컨의 냉기로 식혔다. 갑작스러운 온도차의 크기로 인해 피로감이 몰려온다.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한참을 늘어져 누워 있으니 몸이 자신의 체온을 찾아간다.


아무것도 모르는 반려묘는 늘어진 집사 곁에 궁둥이를 들이밀며 쓰담쓰담을 해 달라 야옹거린다. 사람보다 높은 체온을 가진 고양이를 만지니 다시 덥다. 손바닥이 아닌 손가락으로 건반 두드리듯 스킨십을 해준다. 맘에 들지 않는지 흘겨보듯 옆 눈으로 보고 있다.


더운데 이런 때 거리 두기를 해야지 털도 날리고 기운도 없단 말이다. 설명하듯 핑계 대듯 하는 집사의 중얼거림에 관심을 보이듯 발라당을 하는 반려묘이다. 참내 철이 없어 행복하겠다 하면서 집사는 정식으로 털을 쓰다듬어 준다. 채취해 온 풀도 먹인다. 흡족했는지 자기 자리로 가고 있는 반려묘를 보며 다시 드러누웠다.


약속이 없어서 다행이다. 요즘은 최소한의 기본적인 것만 하고 늘어져 있다. 그렇게 무더위를 견뎌내고 있다. 이전에는 엿가락처럼 아스팔트도 무더위에 늘어졌는데 요즘도 그러한지는 모르겠다. 뉴스를 잘 보지 않으니 모르는 게 많다. 몰라도 살아가진다. 알고 싶으면 인터넷 들어가서 검색하면 수초 만에 알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최고이다. 고양이처럼 긴장을 다 풀어내버리고 드러누워 있으면 에어컨 가동 뒤라 덥지도 않고 딱이다. 최소한의 움직임과 최소한의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내 몸이 에너지 효용을 본능적으로 배분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이전에는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하는 패배감과 게으름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평소 하던 대로 하면서 버티다가 더위를 먹은 적이 많다. 몸도 자기 의사 표시를 한다는 것을 이젠 안다. 몸이 미리 신호를 보낼 때 받아들이지 않으면 몸이 병이 난다.


더우니 늘어지라고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지 나태함이 아니다. 조금씩 해도 되고 나중에 천천히 해도 해야 하는 일은 어떻게든 해내게 되어 있다. 몸과 같이 가야 하지 몸에게 강요하면 오히려 역으로 일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오늘 최소 세 번은 드러누운 것 같다. 낮잠용은 아니다. 그저 드러누워 이완하니 몸에 딱 좋은 체온이 유지되어서이다. 일어나 책상 앞에 앉으면 얼마가지 않아 힘들어진다. 에어컨 바람으로 공기는 시원하다 못해 차갑고 몸도 차갑지만 몸 안은 열기를 끌어안은 듯 힘들다.


차라리 누워서 책을 읽는 게 더 효율적이다. 이렇게 몸의 신호를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서 감사하다. 대부분은 그 신호를 알면서도 그날 해내야 하는 일이 있어 쉬어가지 못한다. 그래도 최소한의 쉬어감을 마음에 담고 있어야 짬짬이 쉬어갈 기회와 대안이 생긴다. 더위를 먹지 않도록 더위가 지나가기를 바란다.


요즘은 택배가 기본 대세인지라 토마토를 주문했는데 박스 모서리가 토마토 액에 젖어 터졌는지 모서리가 테이프로 엉기성기 붙여져 있다. 박스를 여니 안쪽에 짓눌린 토마토와 상처 난 토마토들이 반을 차지하고 있다. 금방 상할 것 같은 것들을 골라서 볶아 놓고 나머지는 정리해 냉장고에 넣었다.


기분이 좀 상했으나 무더위에 배달된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자 마음먹었다. 예전에는 대면 택배가 기본이었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대면 택배는 사라지고 카톡이나 문자로 배달완료를 사진과 함께 보내준다. 이 무더위에 대면이었으면 얼음물이든 음료를 건네주고 잠시 숨을 돌리고 갈 수 있었을 텐데. 하긴 그러면 택배시간만 지연시켜 손해인가. 다 살자고 하는 일이니 힘든 직업이지만 나름 요령껏 쉬어가며 일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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