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 동물이라고 그것은 포장이다
수영장과 집만 오가는 루틴 속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게 되니 관찰을 하게 된다.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은 지가 보인다. '왜 저럴까' 이해가 가지 않던 언행들이 저렇게 생각 없이 내뱉었던 것이었구나.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네. 이유는 후에 만들어진 것이었구나. 자기 합리화용으로 앞뒤가 맞지 않아도 우기는 거였구나. 미치게 황당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구나.
공격당하거나 상처를 받은 후에 왜 저러는 것인가 뒤늦게 살펴보고 이해하려 애를 썼다. 이젠 먼저 관찰하니 조짐이 보이고 그대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서 참 사람들이 생각 없이 감정을 따라가는 게 보인다. 잘못을 수긍하려 하지 않고 합리화하려 더 많은 감정을 추가하고 있다.
먼저 선수 치면 이기는 것이라 여기는지 참 많이도 자신의 감정에 충성하고 있다. 떠들지 않으니 조용하여 더 잘 보인다. 그동안 왜 그럴까를 그렇게 찾아 헤매었는데 이젠 그럴 필요 없이 미리 보인다는 것이 신기하다. 내 속이 고요해야 보이는 것이었구나. 무언가 찾거나 대항하고 있으면 그 소음에 말려들 뿐 앞이 안 보이는 거였구나.
사람들의 선심리가 더 잘 보이니 재미있다. 말하지 않으니 조용하게 살펴볼 수가 있다. 나를 향한 타인의 감정과 감정이 조금씩 보인다. 받고 싶지 않은 상대의 감정배출을 미리 피할 수 있어 좋다. 아마 보인만큼 본 것이지 다 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동안 내가 너무 소란스럽게 살았나 보다. 남에게 소란을 떨지는 않았지만 자기 자신에게 엄청 소란을 떨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좀 잠잠해지니 그동안 그토록 원했던 자기 관찰과 세상 관찰이 조금 가능해졌다. 왜 묵언 수행을 하고 왜 명상을 하는지 알겠다.
내 마음이 마음대로 지어낸 가짜가 아니라 진짜 세상과 진짜 내가 보인다. 참 늦게도 깨닫는다. 늦게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인가. 모든 문제는 나로 인한 것이었음을 알겠다. 감정이 요동하지 않고 충돌도 피하니 에너지 효율이 좋다. 평상시 주로 감정에 이끌려 사는 우리는 이성적 동물이 아니라 감정적 동물이 아닐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성적이고 지혜로워질 거라고 여겼는데 더욱더 감정의 홍수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자신만의 감정에 너무 충실하다 보니 좌충우돌 소란스러워진다. 점점 더 커지는 목소리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고양이들의 영역싸움판 같다. 간혹 소리 큰 자가 이기기도 하지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목욕탕에서 싸우던 두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나머지 서로 벌거벗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난장판을 벌이고 있었다. 너무 흥분하여 내용과 상관없이 나체쇼를 보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엄청 창피하겠다 했는데 집에 갈 때까지 그들은 자신들의 감정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수영장에서도 이런 사소한 것들로 시시비비 신경전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지만 오랫동안 다니다 보면 보이기 시작한다. 극적으로 태클을 거는 사람도 있지만 목욕탕 사건이 떠올라 물속에 얼굴을 처박고 수영하며 대응하려는 마음을 감정을 다스린다. 그렇게 위험한 쇼에서 벗어나면 상대방의 감정만 쓰레기처럼 떠다닌다.
그 쓰레기를 절대 수습하지 않고 뭉개거나 먹혔다고 생각했는지 2차 시도를 해온다. 그럴 땐 무언의 압박을 가한다. 옷 입고 나가서 보자 하고. 수영장레인을 벗어나니 슬슬 피한다. 맞받아치려고 기다리는데 피하니 눈감아주기로 한다. 따져보았자 얻을 게 없다. 알았으면 되었다 싶다. 미치지 않은 이상 3차 시도는 못하리라.
입을 다무니 지혜가 다가오는 것 같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나 여기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다. 내가 조용하니 세상이 재미있게 다가온다. 관람하러 가서 떠드는 사람은 없으니까. 세상을 관람하는 맛이 썩 만족스럽다. 세상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감정이 나대지 않으니 이성이 길을 인도한다. 한동안 인간은 감정적 동물이지 이성적 동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성적 동물이라는 말은 포장일뿐이고 자기 합리화라고. 이제 보니 인간은 감정적 동물이기도 하지만 이성적 동물이기도 하나 보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는 말은 반만 맞는 말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