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외로운가

자기기만

by 오순

나름대로 홀로서기에 충만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간혹 밀려드는 외로움이 있다. 외로움은 식탁 위에 한 세트 숟가락처럼 항상 나와 공존하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홍수가 되어 밀려든다. 이럴 땐 순간 숨쉬기조차 버겁다. 심호흡하고 정신 차리려 한참을 고군분투하게 된다.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에 수다에 목마른 사람처럼 말을 쏟아붓고 있는 내가 보인다. 일방적인 나의 말들을 듣고 있던 상대에게 미안해 급하게 마무리하고 끊는다. 얼마나 떠들었는지 감도 없다. 전화 끊고 보니 40분이 넘었다. 상대는 별 말 하지 않았는데 혼자서 마른세수하듯 씁쓸한 마음을 이리저리 옮겨본다.


꼭 누구한테 한 대 얻어터진 기분이다. 그가 나인지 지인인지 알 듯 모를 듯하니 핑계도 대지 못한다. 이불속에서 킥하듯 혼자서 끙끙댄다. '왜 그랬어.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람이 그리웠니. 말에 목마른 거였니. 잘 살고 있다고 상상한 거였던 거니.' 혼자 수습되지 않는 질문을 해댄다.


이런 일이 자연스럽다 할 수 있는 것인가. 고독과 외로움과 우아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우아함 그런 게 어디 있나. 억지 맞춤 아닌가. 고독은 그냥 고독한 것이고 외로운 것은 그냥 외로운 것이지.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였으면 이리 소란을 떨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외로운데 안 외롭다고 외친 꼴이다. 안 외로워야 잘 지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홀로 서기는 외로운 것이 당연한데도 자신은 특별히 예외인 양 꿋꿋하게 잘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나 보다. 스스로 선택한 홀로서기이기에 외롭다고 외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낯부끄러운 일이라고 여겼나 보다.


드러내지 않으려 마음을 다지며 외로움과 투쟁한 것이다. 외로움을 들키지 않으려 감춘 것이다. 외로움을 친구처럼 잘 안고 간다고 자부한 것이다. 스스로 강하고 자유롭다고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그렇게 보아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홀로 서기가 누가 강한 자만 할 수 있다 했는가. 누가 홀로 서기가 자유로운 자만 할 수 있다 말했던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아무래도 홀로 서기가 무서웠나 보다. 홀로 서자 해서 어느 날 갑자기 홀로 서기가 되지 않는다. 그냥 홀로 살아가다 보면 홀로 서 있다.


홀로 서기는 고립무원 무인도에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공존하면서 홀로 살아가는 것이다. 옆에 사람이 있어도 외로움은 강하게 밀려든다. 혼자 있어서 밀려드는 외로움이 아니다. 그냥 본능적인 외로움이다. 괜히 사회성 부족한 1인이라는 자격지심이 발동한 것이리라.


어디가 모자라 홀로 서기를 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증명하고 싶었나 보다. 부정적인 것은 다 극복하고 없다고 당당하고 강하다고 인정받고 싶었나 보다. 자기 가슴을 마구치는 고릴라 같다. 연이은 전화통화로 배려받지 못한 것 같은 서운함이 밀려들어 기분이 다운되고 있다. 내가 왜 이러나 싶다.


근거는 없는데 서운함만 가득하다. 아마도 내가 외롭지 않다고 외치고 싶은데 많은 말들이 쓸데없이 동원되어 상대방의 귀를 힘들게 했다. 아는 척하지 말고 모른 체도 하지 말고 외로운가 보다 하고 상대가 그냥 들어주었으면 했나 보다. 우쭈쭈 그래서 서운했나.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나니 헛웃음이 나온다.


다행이다. 상대가 이 모습을 보지 못해서. 평온했던 일상이 폭풍을 만난 듯 헤집어졌다.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다. 그 인화점이 전화였지만 시발점은 아니다. 알면서도 상대가 이기적이어서라고 핑계 대고 싶은 것이다. 내가 이기적이어서 상대를 탓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어리석어서 진실을 외면하고 싶은 것이다.


잔잔한 바다에 바람이 일면 거센 파도가 출렁대듯 조용한 일상에 전화 수다가 외로움을 끌어낸 것이다. 파도가 바닷속에서 올라오듯 외로움도 일상 속에서 나온 것이다. 파도치는 바다가 바다이듯 외로움이 출렁대는 것이 일상이다. 바람이 없다고 파도가 없는 것이 아니듯 평온한 곳에 외로움은 항상 있었다. 바다가 파도를 거부할 수 없듯이 삶은 외로움을 거부하지 못한다. 바다와 파도는 하나이고 삶과 외로움도 하나이다.


홀로 있다고 더 유약해지거나 더 강해지지 않는다. 홀로 있다고 이상한 것도 아니다. 모두 홀로 있다. 그렇게 홀로가 우리이고 모두이다. 남들이 알아보지도 못하는 얼굴 한구석 어딘가에 존재하는 점 하나 때문에 성형을 한다고 완전해지지는 않는다. 삶을 성형하듯 장막을 쳐보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다.


어둠처럼 외로움은 부정적 존재로 치부한다. 빛이 없어 어둠이 생기는 것처럼 부족하여 외로움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어둠이 있어 빛이 있는 것은 아닐까. 외로움이 있어 만족도 있고 고독도 있고 즐거움도 있지 않을까. 빛이 먼저인지 어둠이 먼저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 둘은 같이 공존한다는 것을 잊고 있다. 누가 누구에게 의지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 각자는 각각 따로이며 연관되어 있다.


외롭지 않다고 아우성치니 외로움이 더 진하게 여기저기서 밀려온다. 그냥 외롭다고 수다하자고 할걸. 앞으로는 그냥 외롭다 하자. 외롭다고 말한다고 외로움에 빠져 죽지 않는다. 안 외롭다고 외로움을 부정하니 그것 덮는 것이 더 힘들다. 자존심 아무 데나 걸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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