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따로 입 따로
오래간만에 저녁산책을 나왔다. 그동안 무더워서 야외 산책 겸 운동을 하지 못했다. 비가 오고 난 뒤라 그런지 기온이 떨어져 선선하다. 반려견과 함께 저녁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꽤 많다. 산책로 뒤로 고양이가 보인다. 한 마리가 아닌 세 마리나 보인다. 고양이들도 저녁 산책 중인가.
세 마리 고양이가 각자 거리를 두고 구루밍을 하고 있다. 사람들을 경계하지 않는 새끼고양이가 맨 앞 풀숲에 있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살짝 놀란 듯 도망갈까 말까 망설인다. 그 뒤로 엄마로 추정되는 고양이가 드러누워 있고 그 옆에서 형제자매인 것 같은 고양이가 그루밍을 하고 있다. 하나도 아니고 연달아 세 마리가 도망가지 않고 있어 엄청 반가웠다. 연달아 핸드폰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어제는 친구를 만나 수다삼매경에 빠졌다. 날도 무더우니 큰 서점에 가서 책도 보고 옆에 연달아 있는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도 마시고 수다하며 드로잉도 하였다. 간만에 잡은 연필이라 거친 선들이 나온다. 손 따로 입 따로 귀 따로이다. 수다하며 그림 그리기는 긴장도 풀어주고 지루함도 치워낸다.
서로의 크로키를 보며 '어머 이 느낌 좋다' '어 이건 한 번에 내리그었더니 딱이다' '그리는 중인데 모델이 어디로 사라졌네' '상상으로 마무리해야지' 중얼거리며 수다하며 뒤섞여도 상관없다. 꼭 대답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쏟아내도 거슬릴 일이 없다. 세월이 우리 사이를 이렇게 편하게 만든 것이다.
십 년이 넘어가니 얼마나 되었는지 헤아리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 물으면 그저 오래되었다 하고 만다. 드로잉 모임으로 시작하여 이리 오래 만날 줄은 몰랐다. 얼마 하다가 해체되겠거니 했다. 전시도 하고 각자만의 길을 걷기도 하며 개인사에 깊이 관여하지 않으며 적정선을 유지하며 가다 보니 세월을 넘어선 것이 아닌가 싶다.
오랜만에 만나도 반갑고 훈훈하다. 헤어져도 섭섭하지 않다. 어제 만나고 오늘 또 만난 것처럼 가족 같은 가족이 아닌 인연이다. 편하게 친구라 하지만 친구 같지 않은 지인이고 수평선 같은 동료이다. 이 친구는 모임을 떠났지만 하도 오래되어 탈퇴가 아닌 불참한 것처럼 느껴진다.
실내에 장시간 앉아 있었더니 엉덩이가 배긴다. 자리 당번을 정하여 번갈아 가며 화장실도 다녀오고 실내에 있는 작은 전시도 구경하고 보고 싶은 책도 둘러보고 왔다. 커피 한 잔에 장시간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어 눈치가 보이긴 한다. 돌아 앉아 있어 조금은 편하다. 서울 한복판이라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이제 긴 만남을 마무리하고 집에 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