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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탓이오 Mea Culpa

의심

by 오순

긴 세월 유지해 온 모임이다.

오늘 청산할까 생각 중이다.

타인의 감정에 휘둘린 결정은 아닐까 의심이 든다.


팀원 하나가 탈퇴하고 연락도 끊었다.

시간이 흐르니 격했던 감정은 연해지고 보이지 않았던 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냥 가벼운 연말 모임인데 분위기를 무겁게 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자주 보는 모임도 아니고 그동안 지내온 세월의 정이 있는데 털어낼 필요가 있을까.

그냥 흐르는 대로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오늘 분위기 봐서 이야기해 보든지 미루던지 하자.


드디어 모임에 갔다 왔다.

잘 이야기하고 화기애애하게 모임의 방향성까지 정하고 왔다.

그런데 혼자 있으니 허망함이 밀려온다.


이건 또 뭐지. 이 찝찝함은 뭘까.

그 많은 대화가 다 진정성이 부족하고 뭔가 복선이 깔려 있다는 의심이 든다.

난 최선을 다했고 거짓 없다고 확신한다.


그러면 나머지 그들이 문제인가.

나의 확신과 감정은 그들 탓이란 말인가.

기분이 내려앉기 시작하면서 뭔가 초점이 어긋난 것 같다.


우선 나부터 확실한지 보자.

내가 그들이라면 이런 나를 그들은 어떻게 볼까.

아찔하네.


그제야 나의 오점이 보인다.

그들이 복선을 깐 것이 아니라 내가 복선을 깔았구나.

범인은 나였네.


내가 변한 거였네.

그들은 단지 변한 나를 따라 변해진 것이었네.

스님의 죽비가 내 뒤통수를 내려치기라도 한 듯 정신이 번쩍 든다.


모든 원인은 나로부터 발생했음을 이젠 알겠다.

아무리 찾아도 부합되지 않는 퍼즐 조각이 내 안에 있었던 것이다.

'내 탓이오!'가 맞았다.


내 탓 한 조각이 관계 불신의 구멍이었다.

그래도 막가파식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마지막 카드를 흔들지 않아서 그들을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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