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산다
외출을 하려는데 나의 애완 고양이가 냥냥 거리며 자기를 쓰다듬어 달라고 따라다닌다.
녀석도 내가 저를 놔두고 나가는 것을 아는 것이다.
연신 나가지 말고 지하고 놀자고 비벼대고 발라당 누워 뒹굴뒹굴한다.
쓰담쓰담 온몸을 쓰다듬어주며 나가서 볼일 보고 있다가 보자고 말한다.
처음에는 말이 통할까 싶었는데 그냥 말하면 아는 것 같아서 말도 같이 한다.
그렇게 하면 소통한 느낌이 든다.
고양이가 사람과 같이 살게 된 계기가 신석기시대 농경이 시작되면서라고 한다.
수렵채집을 하며 떠돌다가 정착하고 농사를 지어 그 농작물을 저장하였다.
그런데 그 농작물을 훔쳐먹는 쥐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쥐를 쫓아내기 위해 고양이를 곁에 두기 시작한 것이다.
고양이에 대한 개념이 극과 극을 달린다.
이집트에서는 고양이를 신성시하여 죽으면 무덤과 미라를 만들어 모셨다.
반면 유럽에서는 악마나 마법을 부리는 사악한 존재로 여겨 학살을 일삼았다.
중세 유럽에서 페스트가 발생했을 때 유대인 지역이 피해가 적었다 하여 미움을 받고 학살을 했다.
그런데 그 유대인 지역에서는 고양이를 키워서 피해가 적었다.
나중에 두 번째 페스트가 런던에서 발생했는데 도시 내에서 고양이를 대학살 하고 제거한 뒤에 일어난 것이라 한다.
지금은 페스트가 쥐벼룩에 의해서 인간에게 옮겨지고 이차로 인간에게서 인간에게로 옮겨진 치사율이 엄청 높은 무서운 전염병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현재는 고양이를 악마 시 하지도 않고 학살하지도 않는다.
물론 페스트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
그래도 간혹 고양이를 근거 없이 괴롭히고 죽이는 일들이 뉴스에 뜨곤 한다.
개나 고양이 또는 소나 돼지들 모두 인간의 생활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기르고 공생하는 동물들이다.
인간만이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아님에도 최고의 위치에서 함부로 대하는 것은 공존을 위협하고 인간자신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개는 순종적이고 충직하다 하여 가까이하고 고양이는 도도하고 독립적이라 하여 사악하다 여기는 편견이 있는데 이는 무지의 소치이다.
유약하지만 독립적인 면에서 인간은 어쩌면 고양이와 더 닮지 않았나 싶다.
고양이는 의심도 많고 호기심이 넘쳐서 어리석은 짓도 많이 한다.
나름 도도하게 떨어져서 창가에 앉아 있지만 자세히 보면 곁눈으로 집사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그럴 때 오라 손짓하면 정말 빠르게 다가와 있다.
몇 번의 쓰다듬는 손길로 그 삐침은 온데간데없이 그렁그렁 행복한 소리로 늘어져 자고 있다.
고양이는 아기와 같다.
반복적인 놀이를 엄청 좋아한다.
지루해하는 집사에게 끝없이 장난감을 흔들라고 한다.
너무 놀아서 발바닥에 피가 나는데도 상관하지 않고 놀려고 한다.
노는 것에 집중해서 달려드느라 머리가 벽에 찧어도 아픈 줄 모른다.
아니 그게 뭐라고 이리 새롭게 보는 것인지 그칠 줄 모르는 그의 흥이 바보 같고 귀엽다.
아기도 같은 소리로 같은 동작으로 반복하면 연신 까르르 웃어대고 좋아한다.
어쩌면 우리 어른들도 한 가지에 꽂히면 계속 그것만 하려 한다.
다른 것이 있는지 관심도 없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가까이서 지켜보면 모두가 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르다 생각하기 시작하면 상대가 틀리다로 변하여 적대시하고 학대한다.
근본은 공생하는 동물로 모두 같다.
그러나 각각이 생김이 다르고 기질도 다르다.
같으면서 다르니 틀린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것이다.
네가 나를 존중하듯 내가 너를 존중하는 것이 옳다.
우리는 서로 존중받고 존중하며 살아야 하는 유약 하지만 살아있는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