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다
책을 읽고 있는 누군가를 보면 우리는 보통 삼매경에 빠졌다고 한다.
책이 비록 교육적으로 강력 추천되는 고전 명서가 아닌 만화책일지라도 숙제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키득거리는 아이를 보면 지금이 어느 때인데 삼매경에 빠졌냐는 부모님의 야단을 받기도 한다.
삼매경이 무슨 뜻일까.
삼매는 세 가지 과정을 거쳐 진리를 깨달음으로 인해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어떤 것에도 흔들림이 없는 평온한 상태를 말한다.
그 세 가지는 먼저 생각을 없애고, 그다음 어느 한쪽으로 향하지 않게 중심을 잡고, 마지막으로 비워놓는 것이다. 이것은 순서적으로 설명한 것일 뿐 순서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릇이 비워져 있어야 채울 수 있듯이 비워 놓으라는 것이다.
나의 몸과 마음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더 이상 무언가를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가득 차서 터져버리기 직전이다.
생각들이 너무 난무하여 편한 잠도 자지 못한다.
꿈속에서조차 생각을 하고 있다.
어떻게 비워야 되는지 잊어버려 생각이 안 난다.
처음엔 분명 비어 있는 상태로 태어났을 것인데 말이다.
아니면 뱃속에 있을 때 부모님이 태아 교육이라고 무언가를 잔뜩 넣어놓았을지도 모르겠다.
생각은 무엇일까.
생각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생각은 내가 만든 것일까.
생각은 나처럼 독립적으로 태어난 것일까.
왜 생각은 나와 함께 있는 것일까.
생각이 과연 나의 삶에 얼마나 기여하는 것일까.
생각만 없으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몸이 날아갈 것 같다.
생각 없이 행동한다고 비난할 때 그 생각은 어떤 것일까.
살아가기 위해 태어나자마자 우리는 사회생활교육을 받는다.
언어부터 시작해서 거의 초반 반평생을 배우는데 쓴다.
그렇게 읽힌 것을 기반으로 사회생활을 한다.
제대로 진득하게 읽히지 못하고 중도 하차하면 하위계급에 머물 확률이 지대해진다.
그래서 누구보다 상위권에서 편하게 지내고 싶어 기 쓰고 버텨낸다.
인생을 즐기기보다는 나중을 위해서 저당 잡혀 놓고 고행을 하는 것이다.
과연 그 나중이 언제일지 정해지지 않고 경쟁은 계속되고 고행도 계속된다.
평생 그렇게 고행만 하다 갈 수도 있다.
삶은 고행하기 위해 있는 것인지 즐겁게 살라고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
각자의 선택이기는 하지만 행복의 기준이 너무 경제력과 계급에만 치우쳐 있다.
우리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생각을 많이 하다 보면 몸은 현실에 있으나 마음은 여기 현실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감각을 잃고 헛된 망상 속에서 고통을 받는 것이다.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여기를 떠나 여행을 간다.
남의 삶이 보이고 그것을 구경하다 보면 모두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생각 속에서 벗어나니 마음이 훨 자유롭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자유롭고 싶다.
무엇을 얻고자 기 쓰기보다는 아무것도 가지려 하지 않는 지금이 좋다.
가끔 이래도 괜찮을까 하는 불안이 밀려오기도 한다.
뭐 어때 어차피 빈손으로 태어났고 빈손으로 갈 건데 더 가져서 뭘 하겠어 가는데 무겁기만 하지라며 괜찮다고 토닥인다.
설마 굶어 죽기야 하겠어 없어서 불편은 하겠지 체면 그까이것 조금 까이면 어때 그런다고 죽지도 않는데 편한 게 최고지 자유로운 게 즐거운 게 최고지 라며 중얼중얼 위로를 하며 불안을 달랜다.
이런 삶도 괜찮지 않을까.
과거를 질질 끌고 와 이고 지고 무겁게 짊어지지 않고 미래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비워놓고 지금에만 충실한 생각 없는 이런 삶이 삼매경에 빠진 삶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