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과 부정
우리는 평상시에 수많은 시도 속에 질문과 의혹과 답을 찾고 있다.
왜 안 되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났지?
누가 방해한 것일까?
무엇이 장애물일까?
그리고 범인을 찾아 나선다. 장애물을 찾아서 제거하려 한다. 그러다가 처음 시도하려 했던 일은 뒷전으로 밀려나 아예 기억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 일을 방해한 범인을 찾아 응징하려는 것에 집착하게 된다. 응징이 목적이 아닌데 목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 것은 결국 응징에 꽂힌 자신이 진짜 범인인 것이다.
빵 쪼가리 하나 훔쳐 배고픔을 면하려다 평생 감옥에서 전전한 빠삐용의 진짜 죄목은 자신의 삶을 낭비한 죄이다. 억울하다 하여 탈옥에 꽂힌 그의 집념이 위대하다기보다 한 사람의 짧은 인생으로 봤을 때 너무 허탈한 삶이 된 것이다. 자신을 위해 산 것이 없고 이룬 것이 없는 것이다.
왜 안 된 것이지?
무엇을 보지 못하고 빠트렸나?
어떻게 보완해야 하나?
왜에서 응징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왜에서 어떻게로 가는 의문은 방향을 달라지게 만든다. 실패한 시도를 다시 성공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성공시키기 위해 문제를 찾아 해결하려는 것이다. 일에 집중되어 있고 해결에 집중되어 있다.
왜라는 질문과 어떻게라는 질문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간이 된다.
우리는 평상시에 거의 모든 질문을 엄청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인터넷에 한다.
그러나 질문의 핵심을 벗어나면 엄청나게 쏟아지는 답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지 몰라 헤매게 되고 시간을 절약하려 했던 것이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만든다.
질문을 잘해야 하고 그에 따른 많은 답 중에서 선택을 잘해야 그다음 질문과 답을 찾아 연쇄고리를 이어 갈 수 있다.
질문을 잘해야 답도 제대로 나온다.
우리가 보통 왜?라고 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하면 풀어나가려는 긍정적인 생각들을 궁리하게 된다.
왜라는 것보다는 어떻게의 질문이 방향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된다.
가령 도서관에 나와 조용히 앉아 글을 쓰려고 하는 데 집중이 안 된다.
앞에서 옆에서 사람들이 들락거리며 내는 잡음과 소곤거림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거슬려서라는 생각이 든다. 그 속에는 누가 나를 방해하는가 하는 물음이 들어 있었고 답을 그 방향에서 찾은 것이다. 범인을 찾아보았자 글 쓰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경만 더 날카로워지고 조용히 해달라는 요구밖에 못한다. 그래도 사람이 기본적으로 내는 소리마저 시체가 아닌 이상 잠재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곤두선 신경을 부여안고 씩씩거리다 글쓰기를 포기하게 된다.
오늘은 집중이 잘 안 되니 다른 책을 좀 볼까 아니면 사람들을 살펴볼까 하고 시선을 돌려본다. 팽팽했던 신경이 풀리고 다른 책에서 저자의 다른 생각들이 경쾌하게 다가온다. 무언가에 집중해 있는 도서관 내 다른 이들에게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게 여유 있게 그날의 글쓰기를 마칠 수 있다. 여기에는 어떻게 하지 하는 질문이 있었던 것이고 그에 따른 답이 신경을 느슨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글쓰기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왜에 집중되어 있는 문화 속에 살고 있지만 어떻게를 선택하여 문화를 수정 보완하여 업그레이드하는 선두주자가 되는 것이 삶을 제대로 사는 방법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