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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이 필요해

부모 되기

by 오순

처음으로 나 혼자서 손주를 돌봐주는 날이다.

며느리가 집을 알아보러 나가야 해서 그 시간에 백일 갓 넘은 손주를 케어해 주기로 했다. 타이트한 몇 시간이 아니라 낮 시간 전체 동안 아이를 케어해 주어 아이 엄마에게 보너스 같은 휴가를 주어보자 싶었다.


아기를 잠시 맡겨두고 일 보러 나가면 마음은 급하고 시간은 빨리 가고 그렇게 분주하게 정신없이 일을 마치고 허푸허푸 집으로 달려오면 얼마나 지칠지. 기왕 아이 봐주기로 했으면 몇 시간 더 봐준다고 해서 덜 힘들지는 않을 것 같았다. 며느리에게 천천히 일 보고 차도 혼자 마시고 산책도 하고 퇴근시간 때 겹치지 않게만 한 시간 전에 들어오라 했다.


아이 둘을 키운 경험과 노하우가 있어 걱정은 없었는데 생각보다 힘들긴 하다.

백일이 지나니 그나마 예민하여 쪽잠을 자는 손주 녀석이 밤에도 잠을 자지 않아 요 며칠 고생을 했다 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지 엄마가 현관문 열고 나가자마자 자기 시작한 지 20분 겨우 지났는데 잠에서 깨었다. 분유 먹이고 놀다가 10분 자고 일어나 놀기를 3시간 넘게 자지 않더니 지도 지쳤는지 먹으면서 자다가 그래도 다 먹고 이제 곤히 자고 있다.


몇 분을 잘지 모르겠다. 푹푹 자야 쑥쑥 클 것인데 먹는 것은 잘 먹는데 잠을 길게 자지 못한다. 아마 태생인듯하다. 나도 그렇고 아들이 그러하니 손주가 그것을 물려받은 듯하다. 며느리는 잘 자고 순했다는데 그것을 닮으면 효자가 되었으련만 그래도 건강하니 잘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며느리에게 신경 쓰지 말고 일 보고 놀다 오되 중간에 전화하지 말랬는데 카톡을 보내왔다. 마음이 안 놓이는 것을 알고 있기에 사진 찍어 중간중간보고해 주었다. 놀지 않고 일찍 들어오면 다음부터는 아기 안 보아주겠다고 반협박했으니 아마 불안해도 내가 말한 시간이 되면 들어올 것이리라.


멋진 시어머니가 되고 싶어서 그런 것은 절대까지는 아니지만 아니다.

아이 키운 인생 선배로서 그 시기에 아이 예쁜 것 따로로 얼마나 숨 쉴 틈 없이 반복되는 생활에 지치고 우울한지 한두 시간의 자유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얼마나 간절한지 알기에 배려한 것이다.


힘들다고 하면 아이 잘 때 자면 되지 않느냐고 사람들은 무심히 말한다.

그 무심함 때문에 힘들다는 말도 못 했다. 아이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 반복해야 되는 일상이 힘든 것인데 사람들이 오해할까 봐 말도 못 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아이가 걷기 시작할 무렵에는 싱크대 구석에 숨겨둔 소주를 들이켜며 설거지를 했던 기억이 새롭다.


집안에 갇히다시피 아이와 하루 종일 씨름하고 밤에 녹초가 되어 잠자리에 들면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자기만의 일이 끼어들 틈이 없는 일상이었다. 그래서 가끔 오밤중에 아이 재워놓고 빈방에 문 잠그고 들어가 책을 읽었었다. 아이 아빠가 미쳤냐 했다. 문을 왜 잠그느냐 채근했다. 그냥 혼자 있고 싶어서 그러니 상관하지 말라. 혼자 있게 내버려 둬라. 잔소리하지 말고 나가라 했다.


아이 키우는 일은 지난 일이지만 참 고달픈 추억이다.

그 당시는 온라인이 거의 없었기에 아이케어와 집안일을 혼자 도맡고도 당연시되어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같은 입장의 친구들에게 말하면 남편과 집안의 흉이 될까 봐 눈치 보며 포장해서 말하니 속이 답답하긴 마찬가지였었다.


힘든 것 당연하다고 말하라고 나도 힘들었었다고 이해한다고 눈치 보지 말라고 말했다. 며느리가 나의 진심을 알아주면 고맙고 몰라도 괜찮다. 오늘 몇 시간 푹 쉬고 왔으면 싶다. 그래야 아이와 남편을 좀 더 편하게 바라볼 여유가 생길 것이다.


아무리 자기가 원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지만 부모도 힘들다.

부모에게 휴식시간을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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