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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힘

본능

by 오순

눈과 귀 입 손가락 발가락 머리 팔다리 배 엉덩이 등 사람의 기본적인 형태를 거의 다 갖추고 태어난 아기다. 하지만 사람이긴 하지만 사람으로서 활동하기에는 아무것도 없다시피 한 상태이다.


우선 눈은 있으나 볼 수 있는 초점을 찾아야 하고 목도 가누어야 하고 제멋대로 구는 손과 발의 놀림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옹알이를 넘어서 소통하려면 말도 배워야 하고 걷기도 배워야 한다.

배우고 읽힐 게 산더미이다.

배우는 데는 시간제한은 없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 가늠은 있어야 한다.


분유 가루 서너 스푼에 물을 몇십 배로 섞어서 먹는 것이 전부이다.

그것만을 기다리듯 먹는 것에 필사적이다.

하루에 두세 시간마다 급식하지만 그거 조금 먹고 커가는 아기가 신기하다.


생각보다 인간의 체구에 비해 많이 먹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한 끼 먹는 양이 거의 손바닥 안에 들어온다. 아기나 어른이나 횟수의 차이일 뿐 양은 적다.

보통 먹고사는 것에 필사적인 우리의 노력이 허망하다 싶은 양이다.


오로지 먹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젖병을 물고 온몸으로 먹고 있는 아기이다.

어느 정도 먹고 나면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여유롭게 젖병을 받치고 있는 사람을 쳐다본다.

거의 너 누구냐 하는 듯 탐색하는 눈이다. 그러다 다시 먹는 것에 집중한다.


어쩌다 젖병을 놓쳐 아기 입에서 젖병이 빠지면 먹는 것을 뺏기기라도 한 것인 양 일초의 기다림도 없이 본능적으로 울어제친다. 재빨리 젖병을 다시 입에 물려주면 울음은 그쳐지고 먹는 것에만 집중한다.

꿀꺽꿀꺽 넘어가는 소리, 그사이 숨 쉬는 소리, 안도의 한숨 소리도 들린다.


꽃이든 나무든 잡초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생명의 본능은 강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본능일까 이성일까 감정일까.

때로 삶을 놓아버리는 사람들의 그 순간은 본능일까 이성일까 감정일까.


아기의 강렬한 본능에 힘이 전해져 온다.

먹고 싸고 웃고 울고 놀고 오로지 자신의 생명에 집중해 있는 아기의 본능에 감동이 진하게 느껴진다.

생활에 지쳐 본능을 잃어버린 듯 느슨하게 나태하게 끌려가던 마음에 냉수를 들이켠 듯 상쾌해진다.


저렇게 열심히 살면 어려울 게 없을 것 같다.

아기를 케어하려 왔다가 케어를 받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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