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달리기는 속도전이고 경쟁이다. 초등학교 운동회날 이어달리기는 그날의 하이라이트이다. 모두의 응원 속에 마지막 주자가 바통을 이어받아 아슬아슬하게 따라잡아 결국 일등을 걸머지는 그 이어달리기는 보는 이들을 흥분으로 몰아넣는다.
나는 달리기가 싫다. 어쩔 수 없이 달리기를 하면 꼴등을 하거나 넘어진다. 그것도 하얀 운동복을 흙먼지로 도장 찍기 하듯 대자로 엎어진다. 경쟁 자체가 싫고 소란스러움이 싫고 출발할 때 신호하는 총소리가 싫다. 달리다 보면 점점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기분에 달리지도 못하고 거의 걷다시피 하여 골인한다.
인간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속도를 찾았다. 그것에 가속도를 붙였다.
엄청난 가속도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속도는 파괴이든 생산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인간의 도구인 속도가 인간을 넘어서고 있다.
시속 36km인 인간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속도를 높이는 도구를 만들었다.
그렇게 동원된 속도는 지구상의 수많은 것들을 파괴해 나갔다.
인간이 만든 시속 320km 히로시마 원폭에서 시속 0km 은행나무만 살아남았다.
빠르다고 이기는 것은 아니다.
느려도 자기만의 경쟁이 있다.
같이 출발해서 조금 빨리 달려가는 사람이 먼저 도착할 듯 보이지만 조금 앞서서 달려가는 것일 뿐 결국 비슷하게 도착하여 같은 전철이나 몇 분 차이의 앞뒤 전철에 승선하는 차이일 뿐이다.
빨리 간다고 해서 빨라지지는 않는다. 몇 분 차이일 뿐 숨만 가빠지고 모양새만 구겨진다.
일찍 시작하여 가는 것이 일찍 앞서가는 것이지 빨리 가는 것은 아니다.
속도가 아니라 시간일 뿐이다.
수영도 달리기다. 물속에서 달리는 것이다.
앞서서 열심히 빠르게 힘차게 25미터를 달린다.
난 수영도 느리다. 25미터에 가보면 앞서간 그들이 숨을 돌리고 있다.
난 그리 숨이 가쁘지는 않다. 그래서 그들이 쉴 때 그냥 다시 간다.
빨리 가는 그들이나 느리게 가는 나는 결국 큰 차이가 없지 않나 싶다.
숨이 차게 가고 싶지 않다. 숨을 고르며 가고 싶을 뿐이다. 느리더라도.
삶도 그러고 싶다.
빡세게 가고 싶지 않다.
내 숨대로 가고 싶다.
도태되는 듯 보일지라도 내 속도대로 계속 가는 것이다.
만능 이등이라는 딱지를 안고 달리는 마라토너 이봉주는 자신의 의지로 계속 달려 일등을 한다. 짝발이든
어떤 조건을 가졌든 불문하고 그는 일등이 목적이 아니라 계속 뛴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 인간 승리자이다.
모든 사람이 각자만의 속도대로 가면 되지 않을까.
비교할 것도 없고 자신에게 집중해서 가다 보면 꾸준히 갈 수 있으리라.
항상 앞서서 달리는 빠른 주자를 보노라면 때론 자괴감이 들곤 한다.
그래도 나는 계속 간다 내 속도대로.
계속 가는 것이 최선이고 최고이다.
오늘도 마라토너의 첫발처럼 하루의 첫발을 시작한다.
달리든 걷든 내 숨에 맞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