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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스타

낮잠 자기

by 오순

요즘 자려고만 하면 눈이 말똥말똥 해진다.

안 자고 있을 때보다 더 똘망해진다.

뭐 어쩌라고 이러는 겨, 하며 눕는다.


몸은 자자하고 정신은 놀자 하니 부모는 자자하는데 놀자고 밤새는 아기 같다.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

몇 시간을 버디 타다가 일어나 앉는다.


오지 않는 잠을 잘 수는 없으니 포기한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벽녘이 되어서야 녹초가 되어 잠이 든다.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간신히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면 잠이 오니 안 오니 씨름할 새도 없이 곯아떨어진다.

이렇게 이삼일에 한 번씩 잠을 자게 되니 24시간에 길들여진 몸이 적응을 못하여 낮에 낮잠을 자게 된다.


스페인에는 점심 식사 이후 두세 시간씩 낮잠을 자서 휴식을 취하는 시에스타siesta라는 전통적인 문화가 있다. 우리 조상들도 일을 마치고 점심 식사 후 한숨씩 쉬면서 낮잠을 자는 풍습이 있었다.

어디를 가나 사람 사는 것은 마찬가지인가 보다.

프랑스 화가 빈센트 반 고흐도 짚 덤불에서 곤하게 낮잠 자는 농부를 그렸다.


잘이 잘 오지 않아 자기 위해 뒤척거리다 밤을 지새우는 날이 드문드문 발생한다. 그런 날이면 몸이 두세 배로 무겁게 내려앉는다. 다음날 지난밤에 자지 못한 잠이 갑자기 밀려와 잠을 잔다. 자고 일어나도 개운치가 않다.

잠자는 시간 충분히 잤는데도 불구하고 몸 어딘가에 잠이 누적된 것처럼 묵직하다. 할 수 없이 도서관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잔다. 십 분에서 이십 분 정도 잤는데 몽롱함이 어느 정도 상쇄된다.


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현대는 잠시간을 줄여가면서 공부하고 일한다.

많이 자는 자는 무능하고 게으르다는 인식이 심어져 있다.

과연 그것이 경제적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잠을 못 자면 다음날 그다음 날까지 피로가 연장된다.

차라리 제시간에 잠을 자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진짜 급하게 처리할 일 아니면 구태여 잠을 줄여서까지 할 필요는 없다.

그 지샌 하루의 피로가 며칠을 소모시켜야 회복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잠을 자지 못하면 몸은 그것을 채우기 위해 졸거나 몸이 묵직하게 늘어져 맑은 정신으로 일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니 제대로 일한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차라리 낮잠이라도 자서 부족분을 채우고 맑은 정신에 일을 해야 효율이 오른다.


스페인에서도 시에스타가 경제성장에 저해된다 하여 정부가 나서서 폐지하였다.

지금은 웰빙이라 하여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사람이든 기계든 휴식을 가져야만 새로 활동을 가질 수 있다.

억지로 쉬지 않고 일하다 보면 효율도 떨어지고 사고율도 높아진다.


요즘 이 낮잠을 방해하는 것이 있으니 스마트폰이다.

잠시만 자기 전에 숏 영상 한두 개 유튜브 봐야지 했는데 휴식시간을 넘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큭큭 거리고 있다.

요즘 대세인 이 짧은 영상을 숏츠 또는 숏폼이라 하는데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오는 잠까지 쫓아내 버리고 현재 시간을 잊게 만든다.


옆에 반려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영상에서 남의 반려묘를 보고 귀여워하고 있다.

손은 반려묘 등에 있는데 그냥 올려놓고만 있다.

끙끙거리는 소리가 간혹 들리면 미안한 마음에 한번 스윽 쳐다보며 웃고 반사적으로 쓰다듬으며 다른 손은 핸드폰을 터치하고 있다.


영혼 없는 쓰담쓰담에 반려묘는 저만치 물러나 우울하게 집사를 보고 있다.

도대체 뭐 하는 것이냐는 듯 기죽은 모습에 자책감이 밀려온다.

핸드폰을 끄고 다시 불러 몇 번 쓰다듬고 피곤하니 자자하고 눕는다.


역시나 잠은 오지 않는다. 다시 핸드폰을 들고 누워서 영상을 보고 있다.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려고 잠을 줄인 것이 아니다.

영상을 보다 잠을 못 잔 것이다.

그러면서 불면증이라 한다.


시에스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수면제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휴대폰 사용시간을 강제로 조율해야 되지 않을까.

한두 시간 사용하면 저절로 꺼져버린다든가 하는.


자율이 안되니 강제로 아이들 게임시간 조율하듯 성인들도 강제가 필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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