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현재 우리의 자아는 길들여진 사회적 자아이다.
진정한 자아는 그 사회적 자아에 짓눌려 그의 소재를 파악하기도 어렵다.
인간은 자신의 세계를 넘쳐나는 물질로 구축하였고 그 세계에서 자유로워진 것이 아니라 소외되었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물질세계에서 인간이 아닌 물건화되고 중심이 아닌 소외되어 무력감에 빠져 있다.
우리는 서로를 조종하고 서로를 도구로 인식하여 이용하느라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우리의 모든 관계는 시장 법칙으로 통하고 경제법칙에 의해 지배된다.
서로는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며 인간으로서는 소외되어 무력하게 된다.
사람과의 관계가 사람과의 관계가 아닌 사물과의 관계로 사람은 상품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노동을 팔면서 스스로를 물건화 한다.
대부분 우리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느끼고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을 팔면서 물건으로 느끼는 한 자유롭거나 독립적인 존재라 느끼는 것은 착각이다. 자신을 물건으로 느끼는 한 인간은 무기력한 물건일 뿐이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나이가 들어서 잠이 없어진다고들 한다.
나이가 들어서라는 이유는 너무 막연한 핑계이다.
나이 때문에 사회에서 소외되어 가는 자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삭히다 보니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아마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는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필요했던 사회에서 위치마저 흔들리고 의탁하고 살아갈 날이 너무 길어지니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도 더 내팽개쳐지는 기분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손주를 잠깐 돌봐달라는 요청이 왔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요청 하나로 기꺼이 달려갔다.
한 번의 돌봄으로도 몸은 바닥을 친다.
두 번째의 요청까지 간신히 버텨본다.
세 번째의 요청은 버텨낼 수가 없다.
참다가 무너지는 자존감보다 솔직함이 나를 구제했다.
나이 들어 보니 나이 들어 보지 않은 그들은 알 수 없는 나이 든 본인도 알 수 없었던 한계가 드러났다.
겉으로는 멀쩡하나 체력이 급감하며 회복이 더딘 것을 알겠다.
알아주기만을 기다리며 괘씸해하는 것보다 솔직히 선을 그으니 살 것 같다.
선을 그으려니 무능한 것 드러내는 것 같아 속이 상했지만 스스로를 보전하지 못하면 어떤 사고로 이어질지 가늠할 수가 없다.
나이 들어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가족으로부터 도태되어 가고 있다. 그렇게 아웃사이더가 되어 무력함에 빠져 허우적대고 상대 없는 무언가에 분노를 품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손주 돌봄이라는 일에 소용이 있을 것 같아 기뻤는데 마음대로 몸이 조종되지 않는다. 이런 것도 안 되다니 절망감이 앞선다.
정신을 차리자. 내가 있어야 가족도 있고 사회생활도 있는 것 아닌가.
솔직히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나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들이 실망할까 한두 번은 참았지만 다 소용없다는 생각에 세 번째는 여기까지라고 말했다.
걱정했던 것보다 그들이 쿨하게 받아들이니 나도 짐이 덜어지면서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나로 보고 한계를 그으니 무력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어디까지 인지 알게 되어 나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들었다.
소외감과 무력감에서 벗어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막연히 나를 필요로 할 때 무조건 다 해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말하자로 바뀌니 그것이 무능이 아니라 한계를 지어 만능으로부터 벗어나 나를 자유롭게 해 주었다.
무엇이든 다 해주는 만능 부모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자신을 효용가치로서만 볼 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고 지킬 수 있는 자유인으로서 한계를 드러낼 때 비로소 젊은 자식들과 소통이 된다.
작은 차이이지만 사회적 부모로서의 역할만 키울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역할 한계도 수긍하는 것이 자존감을 지키는 길은 아닐까 싶다.
아마 세 번째 요청까지 무리해서 했다면 병원 치료하면서 사소한 것들로 섭섭하고 그동안 참아서 했던 세 번의 도움은 생색내기가 되어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다 해주지 못해도 그들은 한두 번의 도움으로도 충분히 힘을 얻어 그다음 방도를 찾아내는 삶의 지혜가 있더라. 내가 젊어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그 나이에 최선을 다하여 살고 있더라. 나도 이 내 나이에 최선을 다하자.
하루 이틀 쉬고 나니 몸이 회복되었다.
다음에 요청이 오면 충분히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무력감이 아닌 다음을 기약하니 체력을 더 보충하게 운동도 열심히 해야겠다.
길들여진 체면이 아닌 현실의 나를 인식하게 되어 좋다.
물건의 경제가치로서의 내가 아닌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어 좋다.
현재의 능력 그대로를 받아들이니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