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
수영을 마치고 나니 출출하다. 피자가 먹고 싶어졌다. 혼자라서 꽈배기로 대체하였다. 혼자 먹는 피자는 맛이 안 난다. 최소 두 명 이상이 모여 수다하며 먹어야 피자는 제맛이 난다. 혼자 먹기에 양도 많다.
반려묘가 자다 일어나 눈도 제대로 못 뜬 상태에서 코만 벌름거린다. 빵을 좋아해서 밀가루 냄새만 맡으면 줄 때까지 새침하게 쳐다보고 있다. 오늘은 유독 참을 수가 없나 보다. 밀가루나 탄수화물이 고양이한테 좋지 않다 해서 거의 주지 않고 있다.
너는 먹으면 안 된다는 집사를 너는 왜 그리 맛나게 먹느냐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며 번갈아 봉투를 탐욕스럽게 주시하고 있다.
아휴 먹고 죽자 하면서 네댓 조각을 떼어서 주었다. 아주 맛나게 먹는다. 됐다 이젠 그만 먹자 하니 아쉬운 듯 물러난다.
맛도 보여주지 않았으면 삐지고 서운함에 한쪽에 쭈그려 있었을 것인데 옆에 바싹 붙어 그루밍 듬뿍하고 늘어져 자고 있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먹는 것을 보면 그리 행복해 보일 수가 없다.
실제로 먹는 양은 생각보다 아주 적다. 그 적은 양만으로도 모든 사람이 충분히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적은 양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것일까.
더 많이 더 많이를 원하다 보니 자진하여 더 많이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누구 탓도 아니다. 오롯이 자신의 탓이다. 사회의 시스템 탓이다.
자유를 원하면 더 많이를 벗어던져야 한다.
평등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남들과 같아지는 것일까.
다르면 안 되는 것일까.
다르면 도태되고 추방될까.
더 많이 가진 다른 이들처럼 더 많이 가져야 할까.
더 많이 가지지 않으면 밀려나고 굶어 죽을까.
더 많이 필요해서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필요하지 않아서 적게 가지면 평등하지 않은 것일까.
사람은 다 다르다. 이 다름이 평등을 헤치는 것은 아니다.
서로가 각자만의 삶을 살 권리가 있고 그것이 존중되는 것이 평등이다.
각자만의 필요에 의해서 필요한 만큼만 취하며 살면 된다.
모자랄까 봐 더 많이에 휩쓸려 쓸데없이 축재하게 되면 그것이 필요한 이에게 돌아가지 못해 다른 이들의 살 권리를 해치게 되고 평등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더 많이 먹는다고 더 만족하고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비만으로 개고생 한다.
집사와 반려묘 각자의 양만큼만 먹고 만족해하는 우리네 삶이 평등이다.
그르렁그르렁 귀 기울여 들어보면 들리는 반려묘의 행복한 숨소리다.
그 곁에 드러누워 집사도 책을 본다.
아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