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혼자 있다.
한 시간째 공공시설에 혼자 있다.
겨울이라 난방기 돌아가는 소리만 적막을 메우고 있다.
일요일 아침이어서 그런가.
모두들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인가.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만은 싫다.
혼자 있는 공간을 침범당하고 싶지 않을 뿐 그 혼자만의 공간들과 함께 하고 싶다.
도서관 건물이어서 아래층에도 위층에도 관리자나 다른 사용자들이 있음을 알기에 혼자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렇게 혼자 있어도 괜찮다.
그래도 여기 층에 한두 사람이 자리를 공유하고 있으면 좋겠다.
사람은 소통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위험한 죄수를 다른 죄수들과 소통하지 못하게 독방에 가두는 것이 최고의 형벌이다.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독방에 가두는 시간을 법적으로 정해 놓았다.
그 한계 시간을 넘어서면 사람이 미쳐가기에 처벌의 의도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소통하지 않는 인간은 광인이라 한다.
세상과 단절되어 현실을 인지를 못하고 자신과의 소통에만 빠져 있는 것이다.
자폐도 소통이 안 되지만 자신에게 갇혀 있을 뿐 나름대로 소통은 한다.
굳이 꼭 직접적인 대화를 해야만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공간에 있는 누군가의 대화를 듣거나 움직임을 감지하는 것도 소통이다.
누군가 들락거리면 내는 소리들과 움직이는 상들이 간접적이지만 소통이다.
넓은 공간에 아무도 없으면 그런 간접적 소통마저 없기 때문에 답답해지는 것이다.
도서관이 휴관하는 것도 아닌데 왜 아무도 안 들어오나.
북 카페 룸이라서 점심이 되어야 나타나려나.
은근 누구이든 사람이 기다려진다.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들어오려나 보다.
화장실로 들어간다.
나의 소리와 커피 머신 자동 소리만 들린다.
밖에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도 아주 미미하게 들리긴 한다.
나를 자극하는 소리들이 없으니 심심하다.
오늘 유독 이러는 것은 놀고 싶어서일까.
집중을 못 하는 것은 하기 싫어서일까.
내일 놀기로 정했는데 그냥 오늘도 놀까.
사람들과 어울려도 금방 지치면서 회복하는 데 며칠 걸리면서 사람들과 같이 있고픈 마음은 무슨 변덕일까.
엄마가 집에 있어야 안심하고 노는 아이처럼, 집사가 있어도 혼자서 먹고 잠만 자면서 외출하려 하면 우울하게 불쌍하게 오소소 하게 앉아 곁눈으로 슬쩍슬쩍 보는 반려묘처럼, 사람들이 곁에 있어야 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인가.
혼자 서지 못하는 유약한 인간인가.
혼자가 싫은 것은 아니다.
같이 있고 싶은 것이다.
유약한 것이 아니라 공유하고 공감하고 싶은 것이다.
혼자 강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같이 자유롭고 싶다.
두 시간째 정말 조용하다.
내 일을 하고 있다.
그런 나를 보고 있다.
다른 이를 세상을 보느라 나를 지켜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른 이들과 비슷한 나를 보니 신기하다.
시원한 물 한 모금으로 건조한 날씨에 칼칼해진 목을 적셔야겠다.
커다란 유리창으로 겨울 햇살이 따사롭게 들이친다.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본다.
여기저기 우뚝 비뚝 솟은 건물과 낡은 집들의 옥상을 내려다본다.
찻길 건너 오르막을 쳐다본다.
문득 나처럼 세상을 구경하는 놈을 발견했다.
아파트 작은 뒤공원 돌 위에 검은 고양이가 울타리 틈 사이로 밖을 구경하고 있다.
녀석도 심심했나 보다. 햇살도 따스하고.
반갑다. 핸드폰을 들어 확대해 놈을 찍었다. 녀석도 나를 봤을까.
드디어 두 사람이 등장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시끄럽다.
반갑기도 하지만 방해가 더 되긴 한다.
아까 전이 집중하기엔 훨씬 좋긴 했다.
생각 속 현실과 실제 현실은 감각적으로 크게 차이가 난다.
생각 속에서 현실은 존재만 그릴뿐 소리에 대해서는 그리지 못하는데 실제 현실에서는 보이는 상보다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살아 있는 존재로서 다양한 소리들에 반응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간신히 재운 아기 깰까 문소리 발소리 조심하며 숨소리도 크게 내지 않지만 결국 깰 시간 되면 깬다. 잘만 하면 좀 웬만한 소리가 나도 잔다.
집중력 흐트러질까 염려하는 소음들도 적응하면 거슬리지 않게 된다.
지금은 혼자이지만 혼자이지 않은 공간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