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비둘기
최근 우리나라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이 비둘기는 아름다운 빛깔의 깃털을 가지고 있다. 이 비둘기는 본래 베트남 북부 등 온대 지역에 서식하는 새라고 한다. 보통 도심의 비둘기들은 대부분 진한 회색이나 어두운 보라색 그리고 회색에 가까운 흰색 등 칙칙한 색을 가지고 있다.
비둘기가 이렇게 이쁘다고 왠지 비둘기가 아닌 다른 새 같다.
도심에서 거의 날아다지 않고 떼 지어 뒤뚱거리며 걸어 다니는 회색빛 비둘기만 보아서인지 자연 숲 속에 있는 그 새는 다른 종 같다.
도심의 비둘기는 너무 많아 처치 곤란이며 여러 가지 질병을 불러온다는 인식에 많은 사람들이 꺼려하고 하고 있다. 인간이 좋아서 넘쳐나게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비둘기 탓을 하니 그들에게 미안해진다. 이것도 자연생태계 파괴의 한 현장이다.
넘치면 처치 곤란이고 희귀하면 소유욕이 발동하고 인간의 마음이 지구의 병이다.
자연은 그냥 가만 놔두면 스스로 해결하고 회복하며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우리도 자연 속에서 자연을 착취만 할 게 아니라 자연의 일부임을 되새기며 같이 살아나가야 하지 않을까.
인간의 욕망이 필요의 한계를 넘어서면 파괴가 일어난다.
그 피해가 결국 자연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모든 것은 인간을 포함해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아름답다.
자연이든 사회이든 가족관계이든 욕망을 조절할 줄 알아야 공존할 수 있다.
무한한 축재의 욕망은 모든 관계를 파괴할 뿐이다.
어찌 보면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 생존이 아니라 욕망 조절이 진짜 생존일지 모른다.
인간의 절망과 고통과 권태와 착취도 그리고 전쟁도 욕망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지 사용할 물질이 모자라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생산으로 모두가 공평하게 나눌 수 있다 이상 하에 기술을 발달시켜 대량생산을 해대지만 끝없는 욕망으로 사용 가치보다 소유가치로 세상은 아비규환이다.
전쟁에서 전서구로 이용하면서 평화의 상징이니 뭐니 하면서 소중한 존재로 떠받들었던 비둘기이다. 인간의 보호하에 천적은 적고 비둘기의 개체 수는 너무 많아 넘쳐났다. 수많은 비둘기들의 배설물로 인한 건물과 공원 등의 오염과 병원균의 매개체로 전락하였다. 비둘기는 비둘기가 아닌 인간의 도구이었고 이젠 필요 없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천적인 매를 훈련시켜 비둘기를 퇴치한다고 한다. 직접 공격하지 않게 매를 훈련시켜 매가 날기만 해도 비둘기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친다 한다. 천적이 나타난 곳에는 비둘기가 다시 오지 않는다 한다.
사람들이 가까이 가도 날아가지 않고 쫓아내도 살짝 날아오라 근처에서 맴도는 비둘기들에겐 사람이 천적이 아니라 먹이를 주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비둘기를 쫓아낸다는데 그 뒤 그 많은 비둘기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쫓겨난 비둘기 떼가 또 어떤 문제를 일으킬 것인가.
쫓아낸다고 해도 갈 곳 없는 수많은 비둘기들은 공간만 이동하는 것은 아닐까.
애초에 비둘기를 자연 속에 살게 내버려 두었다면 자연 속에서 천적과 함께 개체 수가 조율되고 생태계 파괴되는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고 어떤 이들은 먹이 주지 말라고 탄원한다.
먹이를 주지 않으면 자연 속에서 저절로 개체 수가 조율이 될 거라며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을 환경 파괴범으로 몰아간다. 그것은 길고양이에게도 해당된다.
이런 코앞만 내다보는 방법은 당사자들 간에 분쟁만 일으킬 뿐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다.
지나치게 많은 것은 없는 것만 못하다.
현재 비둘기 개체 수는 조율되어야 하며 인간의 욕망도 조율되어야 한다.
인간의 욕망만 조율되어도 비둘기든 고양이든 개체 수가 저절로 조율되고 세상은 살만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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