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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자

세상에 내놓다

by 오순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이지만 일등이든 이등이든 기억하지 않을 뿐 기록은 된다.

다만 이등은 세인들에 입에 오르내리지 않아 잊힐 뿐이다.

전문가들 속에서는 잊히지 않는다.


어느 것이든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땅에서 갑자기 솟아오르듯 나타나는 창작은 없다.

누군가의 영향을 받아 더 발전시켜서 만들어지는 것이 창작이고 발견이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적자생존이라는 자연선택설 진화론이 확고부동한 이론으로 되기까지 다윈 혼자서 이루어낸 것은 아니다. 그간 많은 이들이 진화에 대한 이론을 거론했다. 예를 들어 장 마르크, 찰스 라이엘, 토마스 맬서스 등이 진화에 대한 영향을 미쳤다.

단지 다윈이 진화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고 책을 출간하여 세상에 알렸던 것이 다른 이들과 달랐을 뿐이다. 이로 인해 그는 주창자가 되고 다른 이들은 연구자에 그친 것이 아닐까.


알프레드 러셀 윌리스가 세상에서 잊혔다는 진화론의 이인자이다.

그는 다윈과 함께 자연선택 진화론 공동연구자로 논문에 게재되고 [종의 기원] 저서에도 거론된다.

다만 세간에서 진화론은 다윈의 것으로만 인식된다는 점에서 잊힌 2인이거나 그의 연구를 다윈이 훔치기라도 한 것처럼 비난의 여론 속에 있다는 것이다.


작업하다 보면 우연의 일치로 같은 것을 창작하거나 발견하게 된다. 다윈과 윌리스도 그것을 알게 되었고 서로를 이해하고 지원했다. 후일 세간에서 그것을 알고 다윈을 공격하거나 윌리스를 지지하기 위해 논란이 되었을 뿐이다.


그 당시 현실에서 다윈은 저명한 학자의 위치에 있었고 이미 연구도 오랫동안 해오고 있었고 다만 발표하지 않았을 뿐 초고도 작성된 상태에서 조언을 원하는 윌리스의 논문이 왔을 뿐이다. 윌리스는 생활 형편이 어려워 독학으로 공부하고 연구하여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무명의 연구자였다.


만일 다윈이 혼자만의 것으로 발표했어도 의문을 제기할 수 없을 만큼 다윈의 연구는 학계에 알려져 있었다. 무명의 학력도 없는 윌리스가 단독으로 발표했다면 과연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을까. 기록은 남았을지라도 몇십 년 아니 몇 백 년 동안 묻혀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신의 창조론을 믿는 당시 종교계의 강력한 반발을 우려하여 발표를 미루고 있던 진화론에 대한 논문을 다윈은 윌리스의 논문을 기점으로 정리하여 두 사람의 공동연구로 발표하게 된다. 당시 기성세대에 있던 다윈은 어찌 보면 그 반발에 대응할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에 비해 아웃사이더에 속했던 윌리스의 논문은 다윈에게 자극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우연의 일치를 인정하고 공동 연구자로 발표한 다윈의 정직함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윌리스도 공동연구자라는 것을 명예와 감사로 받아들이고 서로를 존중하며 각자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서로의 공적을 존중한 그것이 학자다운 면모라 생각한다. 세간에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그들의 업적과 상관이 없다.


간혹 남의 연구나 창작물을 훔쳐서 자기의 것인 양 발표하는 이들이 있기도 하지만 들키든 속아 넘어가 든 그것은 정당하지 못한 삶의 욕심 명예욕이다.

당하는 이는 억울하여 분쟁하기도 하고 그대로 알지 못하고 묻히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누군가 그것을 파헤쳐 알리는 경우도 간혹 있다.


누가 발표한 것이 중요하다기보다는 세상에 알린 그 지식과 진리가 중요하지 않을까. 후세에 영향을 미친 그 진리는 고정이 아니라 그 시대에 알 수 있을 만큼만 안 것이기에 후세대에 더 발전시켜 수정 보완하는 것이기에 누구의 공이라는 것은 죽은 자에게 다 소용없는 것이 아닐까.


세상의 인정보다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과 전문가들의 인정이면 되지 않았을까. 세상의 인정에 흔들리면 자신의 작업을 할 수 없게 된다. 찰스 다윈과 알프레드 러셀 윌리스 그들은 그런 면에서 진정한 학자요 연구자라는 생각이다.


요새는 창작에 대한 도용이나 표절에 대한 시비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인터넷상 수많은 정보를 접하기 때문에 어떤 것에 영향을 받았는지 자신도 정확히 알 수 없어 표절 시비에 걸리지 않게 스스로 창작물을 검토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가끔 의도적인 도용이나 표절도 있겠으나 간혹 진정 표절이라기보다 같은 시대에 같은 영향하에 살기 때문에 같은 인간으로서 비슷한 또는 다윈과 윌리스의 경우 마냥 우연의 일치처럼 같은 것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누가 먼저 발표했느냐에 따라 창작이 되고 나머지는 표절이 될 수밖에 없다.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아무나 발표하는 게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용기 있는 자가 나서는 것이다.

그에게 우선권을 주고 인정해야 되는 것이리라.


서랍 속 논문은 일기일 뿐이다.

세상에 나와야 학문이 되고 지식이 되어 전수되는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발표되지 않은 발표하지 못한 연구들이 얼마나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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