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삶은 살아가는 과정이다.
삶은 결과가 아니다.
결과는 죽음이다.
우리는 물건을 만들어 팔아야 하기 때문에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팔기 위해 물건을 만든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과 가치도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오랫동안의 배움과 수련을 쌓느라 삶의 초반기의 기나긴 시간을 투자한다.
우리는 상품이다. 우리의 가치는 물건이다.
우리는 과정을 즐길 수 없다.
우리가 첫 발을 떼었을 때 환호해 주고 격려해 주던 경험은 점점 사라지고 없다.
오로지 일등이라는 결과를 가져와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
결과물만을 인정해 주는 세상이기에 경험이라는 여유를 부릴 수 없다.
중간에서 낮잠을 자면 경주에서 지는 토끼처럼 쉬지 않고 기어가야만 이기는 거북이가 되어야 한다.
정상에 올라야 이겼다고 인정해 준다.
그리고 또 다른 경주를 연이어 계속하고 또 계속해야 한다.
아마 무덤 속에 들어가야만 쉴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 재산이 축적되면 쉬고 싶다고 계획하고 희망한다.
그 어느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자신도 그 누구도 가늠하지 못한다.
평생을 휘어지게 열심히 모아 보지만 갈 때가 되었다.
지고 갈 수 없는 재물이기에 누려보지 못한 삶에 회한이 몰려온다.
놀 때가 누릴 때가 정해진 것은 없지만 축적한 재산이 없으면 쉴 수가 없다.
손안에 쥔 모래알처럼 빠져나가기만 하는 재물에 매달려 보지만 부질없다.
빠져나가는 것보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발버둥 친다.
삶은 흘러가버리지 창고 안에 축적되지 않는다.
결과가 없으면 인정받지 못한다.
결과가 없으면 나약하다고 게으르다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자책한다.
남이 뭐라 하지 않는데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게으르면 어떻다는 것인가.
나약하면 안 되는가.
사람이고 싶다.
물건이고 싶지 않다.
결과물 있는 유용성으로 판단받고 싶지 않다.
그냥 이대로의 나이고 싶다.
돈이 되지 않아도 밥을 주지 않아도 좋아서 하는 것을 하고 싶다.
배고플 때 허기를 면할 정도는 축적하지 않아도 할 수 있다.
축적은 불안의 최상의 표출이다.
그것을 경쟁에서 승리한 것 마냥 포장하는 것뿐이다.
햇볕을 가리지 말아 달라고 알렉산더대왕에게 말한 디오게네스처럼 한 줄기 햇볕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는 날이 있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거저 주어진 햇볕을 만나 만족하고 있다.
가치를 내 보일 필요 없이 돈 주고 사지 않아도 되는 햇살 아래 이리 행복하다면 그동안 상품이 되기 위해 애쓰고 상품을 만들기 위해 쭈구리 장창 밤낮없이 일한 것들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피 터지게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달리다가 낮잠을 자도 되지 않는가.
우리는 만족하고 행복하기 위해 산다.
그 만족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어느 순간 축적의 욕망 속에 휘말려 들어가 있다.
운동을 하려는 것인지 그저 쳇바퀴를 돌리려 돌리는 것인지 잊은 채 빠져나오지 못하는 다람쥐처럼 우리는 행복추구를 까맣게 잊고 결과물만을 얻기 위해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결과주의, 완벽주의, 승리, 재물 이런 것들은 극도의 불안과 초조를 감추려는 포장지이다.
산 중턱에서 가쁜 숨을 돌리고 산들바람에 땀을 식히며 나무들과 새들과 수풀을 둘러보며 쉬어가는 기쁨이 산을 가는 진정한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삶의 종착역은 빨리 가든 느리게 가든 상관없이 도달한다.
그 과정에서 헐떡거리며 일등 하려고 기 쓰는 것보다 자신의 행보에 맞게 즐기며 가는 것이 진정한 삶의 가치가 아닐까.
어제 하루 그제 하루 더 그끄제 하루 더더 펑펑 놀았다고 결과물 없다고 자신을 책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결과물 없는 헛된 하루하루가 아닌 잘 쉰 하루하루였으니 오늘은 여유롭게 즐기면서 잘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