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먹이 누구 주먹일까
외출하고 돌아오는 집 앞에 소포가 와 있다.
뭐지?
주문한 것이 없는데? 기억을 못 하나? 그럴 리가 없는데?
잘못 온 건가?
대충 들여다보니 주소가 맞네. 그런데 왜 이름이 안 보이지 안경을 착용하지 않아 자세히 보려 해도 잘 보이지 않아 혹 딸이 주문한 것인가 싶어 들고 들어왔다.
요즘 바이러스나 혹여 바퀴벌레가 묻어 들어올까 봐 외부 포장지나 박스를 밖에서 뜯어 내용물만 가지고 들어오곤 하는데 작은 비닐포장이라 그냥 들고 들어왔다.
현관 앞에서 뜯으려 하는데 너무 접착이 강해서 주소 라벨도 포장지도 뜯어지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칼을 들고 와서 뜯으려 하는데 칼로 하지 말라는 주의사항이 있다. 간신히 겉 포장지를 뜯어 물건을 꺼냈는데 무선 헤드폰이다.
어? 딸이 외국에 나가 있는데 뭐 하려고 집으로 택배를 시켰을까?
나한테 깜짝 선물하는 것일까? 나 이어폰 필요하지 않은데?
뭐지? 귀찮네?
헤드폰 박스를 꺼내고 겉 포장지에 있는 주소 라벨지 뜯으려 하는데 뜯어지지 않아 칼로 간신히 조각조각 베어 뜯어냈다.
시차로 자고 있을 딸한테 카톡으로 네가 주문한 헤드폰 와 있다고 보냈다.
두어 시간 후에 딸이 뭔 소리냐면서 묻는다. 사진 찍어 보내니 자기 것이 아니란다. 수취인이 누군지 보라 하기에 쓰레기통에 뭉쳐 던진 라벨 조각들을 꺼내 다시 맞추어 펼쳐 보니 수취인도 발송인도 핸드폰 번호도 없다. 로켓 직구 중국 직구이다.
중국이라는 말에 신용이 도용되었나? 뭐지? 클났다 싶어 부리나케 발송장 번호 간신히 맞추어 검색하니 역시 보내는 이 M★ 받는 이 D★이다.
뭔가 엄청 수상하다.
놀란 가슴 진정하며 쿠팡플레이 주문내역 살피고 통장 내역 검색했다.
돈이 빠져나간 것도 없고 주문 내역에도 없다.
그럼 뭐지?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딸은 확인도 안 하고 왜 뜯었느냐며 엄청 잔소리를 해댄다.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그 포장 안에 폭약이나 마약이 들어 있으면 어쩌려고 이름도 확인하지 않고 뜯냐며 아주 몰아붙인다.
우리 집 주소로 왔으니 당연히 우리 것인지 알았다고 하니 주문자가 주소를 잘못 기입했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변수가 있으니 정확히 우리 이름이 없으면 우리 것이 아니며 뜯으면 불법이라는 것이다.
으씨~!? 우짜야....
우짜긴 택배사에 전화해서 반송처리하든가 택배기사한테 전화하라면서 검색해서 알아낸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내 집으로 온 것인데 뜯으면 불법이라고 야....... 난 몰랐네. 갑자기 범법자가 된 기분이 들어 벌렁벌렁한다. 급하게 포장지 찾아내 재포장 덕지덕지해 놓았다.
옆집 감나무가 자신의 집 담장 너머로 뻗어오자 감을 따먹었는데 옆집에서 자기네 것이라며 못 먹게 하자 이항복이 그 집 문 창호지를 뚫고 주먹을 내밀어 이 주먹이 누구 것이냐며 따졌다는 일화가 있다.
주먹은 이항복의 주먹이 맞는데 내 집에 온 소포는 내 것이 아니니 손대면 안 되는 거였다. 우리 집으로 온 것인데 우리 것이 아니다. 그것을 취하면 불법이 되는 세상이다. 나만 몰랐나? 세대가 변한 것인가?
갑자기 무지렁이가 된 기분이다.
어찌 되었든 요즘은 이상한 사기행각들이 하도 많아서 정신 차리지 않으면 눈뜨고 코 배이겠다. 무조건 내 것이 정확한지 확인되지 않은 것은 가만 놔두는 것이 상책이다. 다음부터는 귀찮더라도 안경을 찾아서 수취인 발송인 이름을 꼭 확인해야겠다.
위사진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S4gZUI90ajs 에서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