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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 확보

가상공간

by 오순

두 눈을 가진 우리들에게 보는 자유는 참 중요하다.

얼마 만의 시야를 확보해야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람들이 북적대는 한 공간에서 장시간 자신에게 집중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지하철의 경우 핸드폰이 없었을 때는 주로 신문이나 책을 보면서 시선을 조율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거의 모든 이들이 가지게 된 핸드폰을 클릭하면서 시야는 실물 공간에서 가상공간으로 이동했다. 아이는 잊어도 핸드폰은 찾는다.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 이것은 외부 세계 차단이라기보다 완전 다른 세계에 홀릭되어 있는 것이다. 지하철 안에서 모르는 사람끼리 나란히 앉아 서로의 신체가 맞닿아 있는 데도 불구하고 불편함을 모른다. 첨엔 불편하다가 어쩔 수 없으니 포기하게 되고 견뎌야 하니 다른 곳에 정신을 팔아 버리고 그렇게 길들여져 이젠 남의 몸인지 나의 몸인지 구분이 투미해진다.


오가며 마주 지나칠 때 신체 일부가 부딪쳐도 사과를 할 줄 모른다. 어디 한두 번 부딪쳐야 사과를 하지 출퇴근 시간에는 부딪치는 것이 일상사라 사과하다 볼일 다 보게 되었으니 서로 그러려니 하면서 지나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핸드폰 속에 들어가 있어 신체의 충돌을 의식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걷는 좀비들이 탄생한 것이다. 그들은 몸 따로 정신 따로의 세계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분리되어 있어도 괜찮은 것일까. 핸드폰을 보지 않고 몸과 마음이 함께인 사람이 더 이상한 사람처럼 보인다.


이젠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를 사용하는 사람은 희귀종이 되었다.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면 모두들 흘끔흘끔 쳐다본다. 디지털 사용이 어려운 노인이거나 이상한 사람 아닌가 싶어서이다. 긴 출근시간 핸드폰을 보다 보면 나의 시간들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기분이 들어 핸드폰을 하지 않고 책을 보려 한다.


책을 보게 되면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고 새로운 정보로 마음이 넓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핸드폰은 볼 때는 재미가 있는데 내릴 때쯤이면 시간을 도둑질당한 것 마냥 머릿속이 멍해져 무언가에 사기당한 기분이다.


나의 존재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기분이다. 졸다가 누가 깨워주지 않았는데도 몸이 깨어 자신이 내릴 곳을 놓치지 않는 사람처럼 무의식적으로 몸이 알아서 집을 향해 가고 있다. 현실 속에 들어서면 낯설다. 그 낯 섬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에 가서도 쉬지 않고 밥을 먹으면서도 오랜 시간 핸드폰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잠자는 시간까지 빼앗기게 된다.


으~ 이러면 안 되지 다음부터는 핸드폰은 연락할 때만 봐야지 하면서 겨우 잠이 든다. 핸드폰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핸드폰을 보게 되고 중독자 마냥 이것저것 핸드폰을 뒤지고 있다. 핸드폰은 외부 차단 시선처리 용이 아니라 의식적 현실을 파괴하는 마약이다.


지금 도서관에서 글을 쓰고 책을 보고 있다. 일요일 오후 3시쯤 되자 갑자기 사람들이 많아졌다. 무언가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 도서관에 온 것이리라. 그 속에 나도 속하고 있다.

평소에는 한산해서 시선처리가 자연스러웠는데 바로 코앞 맞은편에 사람이 앉아 있으니 시선처리가 어렵다.

잘못 시선이 마주치면 방해가 되고 엿보나 의심을 살까 염려스러워서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 구경하는 것보다는 내 시선 때문에 머리가 아파진다. 책 읽기도 집중이 안 된다.


할 수 없이 집중하기 좋은 노트북을 열고 수다를 하고 있다. 노트북 화면에 집중하고 있으니 그나마 시선처리 고민이 덜어진다. 집에 그만 갈까 싶다. 이렇게 시간 때우고 있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하긴 집에 가면 드러누워 드라마 보면서 더 시간을 엉망으로 보내고 후회할 것이 뻔해서 버티고 있다.


그런 와중에 앞에 있는 사람이 퇴장했다.

갑자기 눈앞이 환해진다. 머리도 개운하다.

시선처리 방안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그냥 코앞에 사람이 없으면 되는 거였다.


엄청 자판을 두드려대며 열심히 무언가를 작성하며 나의 궁금증과 신경을 방황하게 만들던 코앞에 사람이 퇴장하니 너무 좋긴 하다.

읽히지 않는 책 읽기를 포기하고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점점 더 빠져들어 좀 심하게 타타타탁 두드려 댔나 보다. 그것이 앞사람 신경을 거슬렸는지 갑자기 노트북 접는 소리가 탁 나더니 후다닥 짐을 싸고 나갔다.


의도하지 않은 신경전에서 승리한 기분이다.

모르겠다.

좀 찜찜하다.

그냥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더 나은 시선 보호 방안이 있을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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