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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들후들

짊어지다

by 오순

10킬로짜리 쌀 포대를 들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한 것처럼 팔다리가 뻐근하니 후들거린다. 너무 힘들어 입이 마르고 두통까지 온다. 이제 5개월 갓 넘은 아기를 하루반나절 캐어해 주는데 기가 빨린다. 손주가 가고 난 뒤 완전히 뻗어서 자는데 너무 힘드니 진짜 천근만근 몸을 뒤척이기도 힘들다.


옛말에 '아이 볼래? 밭을 멜레?' 물으면 모두들 밭을 매러 간다는 데 그 말이 이해가 된다.

아들네가 이사하는 날이라 손주를 집에 데려와 케어하는데 정말 힘들다.

내가 젊어서 키울 때와는 또 다른 힘듦이다.


젊었을 때는 힘들어도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일할 힘이 생겼던 것 같은데 이젠 나이 들어 근력도 없고 힘도 없어서 하루도 못 버티겠다. 바윗돌처럼 튼튼한 손주 녀석이 자기를 들었다 놨다 이리저리 이동하라고 가짜 울음으로 나를 조종하고 있다.


정말 들어 올리기가 너무 힘들다. 안고 다니기도 힘들다. 손주는 신이 나서 뭐라 뭐라 옹알대며 노래 아닌 흥얼거림을 외치는데 할 말이 없다. 놀기 바빠 잠도 자지 않으려 떼를 쓴다.


간신히 전날 밤과 다음 날 하루 온종일 오밤중까지 케어하고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손들었다. 계속하다가는 협착증 허리 끌어안고 입원해야 될 상황이다. 무릎까지 아프다. 사는 게 녹록지 않다.


몸으로 살아나가는 사람으로서 쇠약해져 가는 노화를 막을 수도 없고 간신히 유지하는데 늙어보지 않은 젊은 아들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다. 엄마이니까 당연히 다 해 줄 것으로 여긴다. 옆에서 며느리가 조율하니 망정이지 자기 앞만 보는 아들을 뭐라 할 수 없다. 나도 내 앞가림을 해야겠기에 한계선을 그었다.


무조건 참아내고 병원 실려 가느니 서운해해도 거절하자. 거절 잘 못하는 내 성격과 거절하기 어려운 엄마 입장이라 미리 선수를 치는 것이 상책이다. 하루 종일 힘드시죠 감사해요, 하며 며느리가 감사 인사하길래 하루 종일은 많이 힘드네 하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당장 어찌할 바 모르길래 걱정 말고 볼일 보라고 했다.


하루 더 맡기려는 아들 심사가 본능적으로 느껴져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한계를 미리 말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될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주려니 하고 참으면 서운한 일만 생길 것 같아 내 몸을 내가 아니 미리 말하는 것이 옳다 여겼는데 그것이 맞아떨어지니 잘한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다.


밤 11시 넘어서 와서 이사한 자기 집에 가서 애 보아달라고 한다. 힘들어서 안 된다고 했다. 먼저 며느리에게 운을 띤 게 있어서 좀 가볍게 거절을 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못해 준다 싶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편한 말이 나오지 않아 서로 오해를 부를 수 있는데 잘 넘어갔다.


젊은 사람은 하루 잘 쉬면 금방 회복되지만 나이 든 사람은 몇 주를 쉬어야 한다. 그렇게 끙끙 앓아눕느니 반나절은 가능하고 하루 온종일은 힘들다 하고 선을 긋는 게 낫다 싶다. 이제 시작이지 싶다. 아마 자주 아이 케어 요구할 상황이 발생할 것 같다.


늙어서까지 엄마 노릇해야 한다는 것이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으니 조금은 서글프다.

노우를 할 수 있는 것도 용기인데 노우 하기가 어려운 것이 부모 맘이 아닐까 싶다.

나도 부모 마음을 몰랐었다. 해주면 해줄 만하니까 해주었나 보다 하였었다.

미리 얼마나 힘들까를 살피지 못했었다.


며느리의 친청 어머니인 안사돈은 집에 온 딸과 손자를 케어해 주고 몸살이 났다 한다.

시어머니인 내가 약아빠진 것인지 친정어머니가 착해빠진 것인지 둘 다 노화를 거치고 있는 나이이면서 거울 보듯 서로의 처신을 보고 스스로 챙기기를 바란다.


품 안의 자식이 아니다. 다 장성한 성인이니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다.

늙어서 죽어라 버티기는 오히려 장기적으로 역효과를 낼 것이다.

내 자식을 나처럼 불효자로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핑계를 대본다.


사돈, 이제 우리 한두 발 뒤로 물러섭시다.

우리 노년을 제대로 걸어가려면 힘을 남겨 놓아야 합니다.

힘이 부친 것은 참지 말고 힘들어 못하겠다고 거절합시다.

그러면 젊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자식들도 젊어서 다 해결해 나갈 겁니다.


우리 부모가 웃을 때 자식들도 행복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지탱해 나가는 것이 그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길이다.

노년은 어찌 보면 지고 있던 자식들을 내려놓고 자신을 짊어지는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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