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하다
구체적인 대상이 없는 대상을 향해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다.
세상의 어리석고 무지몽매한 자들을 향한 분노이다.
그들의 어리석음이 유약하거나 예민한 사람을 몰아붙이고 상처를 주고 있다.
자기들만 정상인 것처럼 상대를 미친 사람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목소리 크게 울부짖으면 다인가.
육체적 힘이 세다고 우월한 것인가.
기에 눌려 밀려나는 유약한 사람은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무리를 지어 세를 만들어 자신의 권력으로 사용하는 어리석은 자이다.
사자 가면을 쓰고 위세를 부리다 들켜서 쫓겨난 여우는 귀엽기라도 하지.
그 여우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낸 꾀이다.
그 여우는 자신이 미약한 존재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저 인간들은 자신이 무지한 줄 모르고 오리려 똑똑한 줄 안다.
깨우쳐 주려 해도 듣지를 않으니 소귀에 경 읽기이다.
왜 저러나 싶다.
그래 너 잘났다. 그렇게 착각대로 살아라.
하며 피해 다녔는데 오늘은 유독 신경에 거슬린다.
콕 집어내어 내던져 버리고 싶다.
밖을 향한 분노는 갈 곳도 없고 수습도 되지 않는다.
이불킥 하다 더 깊이 자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모두 잠든 한밤에 잠을 못 이루고 있다.
회피한 대가이려니 감수해야겠지.
마주 대하기에는 에너지가 너무 고갈된다.
그래도 자신을 버리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럴 때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혼자 헤매다 분노하다 이불 킥하다 지치면 자고 일어나 아무렇지 않게 아무도 모르게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수습할 번거로움이 없어 좋다.
간밤에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세상을 향한 분노와 전쟁을 치른 내가 멀쩡하니 새로이 하루를 시작하면 된다.
밤새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져도 다음날 태양이 제시간에 멀쩡히 떠오르듯
오늘 나는 세상과 더불어 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