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약해지다
늘어진 몸을 추스르기라도 하게 산책을 다녀와야겠다.
마음은 계획한 일을 진행하고 싶은데 몸은 늘어져 게으름 피울 궁리만 하고 있다. 몸과 마음이 따로인지 생각 속에서만 분리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몸 따로 마음 따로 합치하지 않으니 집중이 안 된다. 집중이 되어도 모자라는 판국에 분산된 에너지들은 먼지처럼 날아다니고 있다.
엄마 곰이 새끼 곰 세 마리와 위험한 대로를 건너려고 하고 있다. 엄마 곰의 입은 하나라서 한 번에 새끼 한 마리만 옮길 수 있다. 엄마 곰이 새끼 한 마리 옮겨가고 있을 때 잽싸게 다른 새끼 곰이 엄마와 뒤떨어져서 혼자 뒤따라 길은 건너가고 있다. 남은 또 다른 새끼 곰은 나무 위로 올라가고 있다. 엄마 곰이 나무 위로 올란 간 새끼를 데리러 길을 건너면 데려다 놓은 새끼 곰이 엄마 곰 뒤에서 대로를 건넌다. 새끼들이 한자리에 있지 않고 왔다 갔다 하니 그걸 막아야 하고 데려와야 하고 엄마 곰 혼자 왔다 갔다 혼란에 빠졌다. 다행히 대로에 차들이 지나가지 않았다. 나중에 어찌어찌하다 엄마 곰 새끼 곰들이 다 함께 길을 무사히 건너갔다.
내 맘이 엄마 곰의 마음 같다. 도대체 갈짓자 제대로 갈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어쨌든 길을 건넌 곰 가족처럼 나도 내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말이다. 지속하는 것이 최선인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자꾸만 가라앉는다. 기분이 피곤한 몸처럼 퍼질러지려 한다. 하고 싶은 것 할 것은 많은데 이제 초입인데 언제 밭을 갈려고 그늘을 찾아 드러눕는 게으른 농부 같다. 자책하면서도 집중력이 떨어진다.
사람이 심약해지면 온갖 것들이 위험지수로 느껴진다. 뭐 하나만 잘못되어도 충분히 수정할 능력이 됨에도 불구하고 다 엎어버리고 포기하고 싶어진다. 이것은 일시적인 번아웃일까 아니면 지나친 신경과민일까.
밤새 외국 나간 아이의 연락처를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공포가 밀려온다. 그냥 물어보고 알려주면 기록하고 저장하면 될 간단한 것을 가지고 비상 연락망이라는 말을 쓰면 진짜 비상사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가 말이 씨가 된다고 내가 사고를 부르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루었다. 새벽녘에 이르러서야 비상이라는 말을 생략하고 연락망이라 하며 아이의 친구 들과 본인의 전화번호와 주소를 알려달라 카톡을 보냈다.
외국에 있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아이가 연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멀리 아주 오래 살지도 모르는 곳에 갔으면서 카톡 하나로 연락하고 있다는 것이 불안을 자극하였다. 내가 어떻게 아이를 찾아갈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무모함이었다.
여러 가지 챙겨야 될 서류와 짐들로 인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지만 아이가 떠난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데 대책을 세우지 못한 것이다. 각자의 삶에 적응하느라 또 다른 것들을 잊어버린 것이다. 뒤늦게 아차 싶어 연락망을 챙겨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차로 인하여 뒤늦게 카톡을 확인한 아이가 갑자기 왜 그러냐며 연락처를 보내왔다. 아침 수영하고 햇빛을 쏘이며 집에 와서 답장을 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부풀려 밤새 걱정을 한 내가 어이가 없다. 사람이 어디까지 취약해지는 것일까.
분명 처음으로 혼자 살기를 하고 있고 경제권이 바닥이고 앞날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생존해야 하는 불안 때문에 여차하면 엎어져 못 일어날 것 같다. 누군가 손가락으로 가만히 찔러보기만 해도 그대로 쓰러지는 수숫대 같은 느낌이다.
나의 불안을 알기에 한 시간 하루를 버텨내려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분산하여 버텨내야만 일 년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그럼에도 오늘은 자꾸 집에 가서 아무 생각 하지 않고 자고 싶다. 그런다고 집에 가면 자는 것이 아니라 불안해서 냉장고를 열고 닫기를 반복하며 먹어대고 현실을 잊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드라마 보며 더 많은 스트레스를 쌓아가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에 여기 이 자리에서 버티는 중이다.
일도 갈짓자 글도 갈짓자 마음도 갈짓자 오늘은 모든 것이 갈짓자이다.
그래도 삐뚤빼뚤 가다 보면 오늘 안에 도착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