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사촌 누이 집에서 쫓겨났다.
회식을 마치고 12시가 가까워지자 서울 근교에 사는 그는 막차를 놓쳤다.
부모님을 일찍 여읜 그를 가엾이 여기는 사촌 누이가 떠올랐다.
착한 사촌들이라 당연히 재워줄 것이라 아무 의심 없이 재워달라고 했다.
사촌 누이네는 자매들이 많다.
누나뻘인 사촌은 그에게 무조건 잘해주는데 동생인 사촌은 그를 경계하는 게 느껴져 기분이 좀 언짢다.
사촌들은 방 하나에 자매 셋이 자취를 하는 데 마침 다락이 있어 그곳에 올라가 잠을 청하였다.
사촌 동생이 언니들에게 강력하게 이건 아니라며 부모님이 계셨으면 몰라도 다 큰 여자들만 있는 곳에 다 큰 남자가 공간도 없는 곳에 와서 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설득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제 와서 가라고 하냐고 자기들은 못한다 하자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다락에서 끌려 나오다시피 한 그는 동생한테 거절의 의사를 들어야 했다.
남자니까 여관이나 이런 더 가서 자던지 택시 타고 가든지 할 수 있지 않느냐며 여자들만 있는 이 공간에 아무리 사촌이라도 남자이니 같이 잘 수 없으니 서운해도 양해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표현은 안 했지만 수치스러웠고 지독한 사촌 동생이라는 생각과 그 말이 맞는 말이기에 반박도 못하고 밤거리로 나왔다. 정말 잊지 못할 아픔이었다.
그 뒤로 한 번도 사촌 집을 찾지 않았다. 그러다 이모 장례식장에서 그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잊었을지 모르지만 그는 잊을 수 없는 그 일이 떠올라 씁쓸했다.
그에게 쐐기를 박았던 사촌 동생은 나이 많은 불구의 남자와 결혼해 아이 낳고 살고 있었다. 그렇게 똑 부러지게 정확했던 그 사촌동생이 장래성 없는 남자와 살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헛똑똑이였던 것일까.
그런데 어딘가 당당하다. 그것이 그녀에게 쉬이 다가갈 수 없는 벽이 되었다.
그의 누이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 항상 누군가를 만나면 울고 짜며 한이 많은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해서 그를 창피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누이가 그 사촌 동생에게 자신의 허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창피하고 자존감이 바닥나는 것 같아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것을 본 사촌 동생은 예전처럼 똑 부러진 감정선을 보이며 그의 누이 이야기를 공감하며 듣고 있었다. 그처럼 누이의 이야기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 그에게는 또 다른 거리를 느끼게 하였다.
그는 결혼하여 아이 둘 키우며 집 장만하고 일을 하며 사는 것이 버겁지만 나름 뿌듯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촌 동생은 그러한 그의 기준을 아주 소소하게 만들어 버리는 후광이 있었다. 그는 보지 못했지만 느낄 수 있는 그 사촌 동생의 빛 때문에 함부로 끼어들 수 없었다.
현실적인 삶에서는 사촌 동생은 그보다 하위층의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느끼는 삶은 그가 결코 느껴보지 못한 상류층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다. 많은 것을 가져야만 누릴 수 있다 여겨 아등바등 살아온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져 자리를 뜨고 싶다.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를 짓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그의 누이가 또 어리석게 그가 드러내놓고 싶지 않은 그의 취약함을 언제 어떻게 발설할지 불안하기만 하다. 대화다운 대화도 못하고 긴장한 채 자리를 겨우 지켜냈다. 그의 자존감을 그 사촌 동생은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아 그것이 또 괴롭다. 그런 것들을 눈치채지 못하고 시부리고 있는 누이가 정말 치 떨리게 지겹다.
그는 또다시 사촌 동생에게 판정패당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