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
그녀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청소부로만 보이는 그녀가 그녀의 전부가 아니고 극히 일부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녀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하고 있으며 얼마나 고상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하찮은 청소부의 모습으로만 보는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청소부가 하찮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으로만 본다는 것은 무언가 자신을 왜곡시키는 것 같아 억울하였다. 왜 그 사람에게 유독 설명하고 보여주고 싶은 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을 잘 보아주지 않는 그 사람이 싫다. 그 사람이 싫은 것이 아니라 그 눈빛이 싫다.
그녀는 청소부이기 전에 사람이다. 어쩌면 그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은가. 단지 그녀가 청소부라서 서열이 낮아지는 것은 불공평하지 않은가.
청소부와 그 사람이 아니라 단지 같은 사람으로서 존재하고 싶다. 그 사람의 무심함이 그녀에게 무례함으로 다가온다. 그것을 모르는 그 사람이 그녀를 힘들게 한다. 그 사람에게 자신을 알리고자 한 행위들이 오롯이 그녀의 오지랖이 되었고 스토커가 된 것이다.
그녀는 그 사람과 왜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아마도 청소부로만 한정된 눈빛 때문이 아닐까. 그 눈빛의 무심함이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이다. 청소를 하니 당연히 청소부가 맞다. 하지만 그녀도 사람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왜 그 사람은 그렇게도 당당하게 구분 지어 보는가. 누가 그 권한을 주었단 말인가. 왜 그녀만 힘들어하고 그 사람은 자유로운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녀는 모른다. 알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녀는 그 사람을 도서관에 오는 할 일 없는 백수라든가 신인작가라든가 그런 식으로 한정 짓지 않는다. 눈이 자신에게 있다고 함부로 보는 것도 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녀를 청소부로 한정 짓는 눈초리는 그 사람의 것이고 그의 죄이다. 그녀가 증명해야 되는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자가 증명해야 되는 것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직업으로만 본다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그 마음이 어떠할까.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직장에서 위치와 역할로만 인정되지 사람으로서의 인정받지 못함을 느끼기에 아웃되어 버린다. 용도가 정해진 휴지처럼 사물이 되어 사람인데 사람이 아닌 것이다. 존재감을 잃으니 사표 내고 떠나고 싶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보든 별 상관하지 않으면서 왜 그녀는 그 사람의 눈빛에만 괴로운 것일까. 아마도 그녀는 그 사람과 같은 동류라는 생각에 친밀감을 느꼈고 믿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귀찮다는 듯 무심해지는 눈빛에서 그녀는 마음이 상한 것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없었다 하여 아무 책임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그녀 혼자 미친 스토커가 된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인사도 하고 편하게 대하더니 더 이상 밀착하지 말라는 듯 내치듯 냉담해진 그 사람이 문제의 발단이다. 중간이 없다.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밀어내 버려도 된다고 누가 그랬나. 존재감을 내쳐도 된다고 함부로 결정해 버려도 된다고 누가 허락했단 말인가. 그런가 보다 그냥 받아들이면 될 것인데 자주 보니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 사람만 쿨해지고 그녀는 스토커가 되어버린 것이다.
친밀해질까 봐 엉겨 붙을까 봐 미리 겁을 내고 도망친 그 사람의 태도가 괘씸하다. 일어나지도 않은 것을 의심하고 확신으로 단정 지어 내쳐버린 그 사람의 선택이 용서가 안 된다. 그녀의 마음과 행동은 그녀의 것이지 그 사람이 함부로 내쳐버릴 것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것 같지만 큰 상처를 준 것이다. 그녀가 비켜갈 시간과 공간을 주었어야 한다.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어야 한다. 칼로 무우 자르듯 그녀의 마음을 베어 내버리면 피가 흐르고 아프다. 그것을 모르쇠 하는 것은 엄청 나쁜 놈이다. 그것에 대해 항의하는 그녀를 스토커 취급하면 안 되지 않은가.
무엇을 하든 모르는 사람끼리도 기본적인 존중이 있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과 사이는 존재에 대한 섬세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서로에 대한 존중이다. 그 사람은 그녀를 존중하지 않은 것이다. 그녀의 선택을 믿지 않은 것이다. 자기식대로 자기만 보호하고 쳐낸 것이다. 그 사람이 그것을 알았으면 한다.
길가에 들꽃도 혼자 피어났지만 오고 가는 사람들의 다정한 눈빛을 받는다. 그 눈빛이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스쳐가는 인연이지 얽히는 인연이 될 가능성 거의 없는 그녀를 엉겨 붙는 귀찮은 존재로 단정하고 무시해도 된다고 스스로 결정 내고 행동한 그 사람은 아주 비겁하다.
오늘도 그녀는 그 사람의 사과의 눈빛을 기다린다. 눈빛 하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