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다
그녀는 말이 느렸다.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있을 때 우물우물 흐릿한 흙탕물 밑바닥에서 무언가를 건져내려는 듯 한참을 더듬거렸다.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던 사람들은 그녀의 습성인가 보다 하고 그냥 넘어가버렸다.
그녀의 다음 말들을 기다리지 않고 다들 저마다의 이야기를 시작해 버렸다. 그녀는 뒤늦게 더듬어 건져낸 말을 표현하였지만 이미 들을 귀들이 떠난 뒤이거나 남들의 말에 뒤섞여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꿋꿋이 자신의 말을 하는 그녀를 지켜보며 무슨 말을 하는가 궁금해졌다.
소음 차단하듯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소음으로 간주하니 그녀의 말이 들려왔다. 별말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말을 엄청 음미해서 힘들게 말하는 어린아이 같은 그 소박한 진지함이 신기하였다. 남들의 속도에 맞추지 못하는 그녀의 소통은 자칫하면 위험하게 무시당할 수 있는데 그 꿋꿋함이 그녀를 지켜주고 있었다.
하긴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들 이야기로 돌아간 그들의 말들도 별반 그녀와 다를 게 없었다.
그냥 단순한 수다였다. 다만 그녀보다 속도가 엄청 빠르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그런 빠름에 굴하지 않는 그녀의 당당함이 좋다.
이젠 마음을 다잡고 기다리기로 했다. 그녀가 말하기 시작하면 심호흡하고 끝까지 들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어떤 때는 그 지지부진한 말들의 끝을 언제 낼까 싶게 그녀는 계속 느릿하게 말하고 있다.
화장실 가고 싶어진다. 참고 기다리는 것을 겨우 눈치챈 그녀는 자기가 표현이 느린다며 미소 짓는다. 느린 사람이 있을 수 있지 괜찮아 나는 엄청 빨라라고 말했다.
그녀는 드러난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느낀 느낌을 표현하고 싶은 것 같다. 그것을 한 번에 하지 못하는 것 같다. 화가 나면 목소리 커지면서 제스처나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거나 해야 하는 데 별반 변화 없이 의성어로 책을 읽듯 소리를 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따로 말로 묘사하려 한다.
그러니 말이 길어지고 느려지고 적절한 것 찾느라 헤매는 것 같다. 그냥 무성 드라마 보듯이 그녀가 말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재미있다. 느림의 진수를 느낀다고 할까. 그렇게 천천히 태도를 보고 말은 어차피 나중에 들리니 보고만 있으면 된다.
동시에 보고 들으려 하지 않고 보고 나중에 들으니 편하다. 빠르지 않으니 나름 에너지가 덜 쓰이는 느낌이다. 그냥 흐르듯이 있으면 된다. 남들과 비교되지 않는 그녀와의 대화법을 터득한 것이다.
재촉하지 않으니 그녀는 편하게 이야기한다. 재촉하면 더 당황하여 더 헤매고 더 느려져 속 터진다고 할 수 있는데 재촉받지 않으니 편하게 자연스럽게 더 이상 느려지지 않고 그녀 자신의 속도를 유지하며 말한다.
그녀는 나와 다른 어법을 가지고 있었다. 느리다고 해서 엄청 느린 것이 아니라 기다리지 못해 느려터졌다고 생각하는 것일 뿐이다. 간발은 아니지만 두세 발의 차이 정도이다. 그 정도는 충분히 여유 있게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다르지만 함께 할 수 있어 좋다. 가끔 급한 마음에 그녀 대신 말을 해버리고 앞서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녀는 마음 상하지 않는다. 내 말은 내 말일뿐 다시 그 말을 자신의 어조로 표현해 내는 그녀이다. 결국 기다리는 것이 시간 절약되고 빠른 길이다.
어쩌면 빠른 우리를 그녀는 따라오지 못하니 이해할 수 없어 자신의 어조로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빠른 우리일 뿐 그녀는 같은 말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말을 듣지 못했으니 자신의 말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일 우리가 그녀와 같은 속도로 말을 한다면 그녀는 같은 말을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지적으로 생물학적으로 모자라거나 불편한 사람은 아니다.
단지 느릴 뿐이다.
가끔 보물 찾듯 원석 같은 표현도 한다.
기다리지 않았으면 하마터면 놓칠 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