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얼웅얼 야옹야옹
저녁 10시가 넘은 늦은 귀갓길 버스에 올랐다.
차 안에는 몇몇 안 되는 승객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다. 버스 기사가 웅얼거린다. 뭐지? 하는데 끊긴 것인지 안 들린다. 그다음 역쯤에 다시 기사가 웅얼거린다. 마치 만취에서 깨어나 목이 잠긴 잘게 갈라진 저음으로 웅얼댄다.
뭐라는 겨? 하고 귀 기울이니 역이름을 말하고 있었다. 안내방송이 고장 났나? 무심히 생각하고 있는데 그다음 역쯤에서 또다시 기사가 웅얼댄다. **역입니다 천천히 조심해서 내리십시오 어쩌고 저쩌고 웅얼거린다. 응답을 듣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비스 말투도 아니고 냅다 던지는데 혼자 중얼대듯 좀 크게 말하고 있었다.
안내방송이 고장이 난 것도 아니었다. 왜 저러는 걸까? 승객이 두어 사람밖에 없는데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어 좀 무서워지려 한다. 표시 안 나게 뒤를 보니 한 사람 있다. 혼자가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다음 정거장에서 한 사람이 더 탑승했다.
기사는 여전히 웅얼댄다. 술에서 깨어나 혼자 대화하듯 중얼대는 데 멀리서 운전자 미러로 슬쩍 보니 나이도 꽤 드신 것 같다. 술 취한 것 같지는 않은 데 화가 난 것도 아닌데 왜 저러는 것일까. 친절하고 깔끔한 말투도 아니면서 안내방송이 정확하게 계속 나가는데 왜 저러는 것일까.
심심한 것일까. 조금만 거기서 더 어긋 가면 시비 터는 목소리이다. 그 운전기사의 시야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못 들은 척하면서 신경은 온통 거기로 쏠렸다. 나중에 혼자 남으면 좀 무섭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사를 계속 지켜보았다.
기사는 역마다 웅얼대었다. **역인데 내릴 실 분 안 계시나요 안 계시나 보네 하며 그 역에 잠깐 주춤 멈추더니 출발합니다 하면서 가고 있다. 벨을 누르지 않았으니 내릴 사람이 없는 것 알면서 저렇게 자막 처리하듯 말로 웅얼거리고 있다.
피곤한가 졸린가 졸음 멈추려고 웅얼대는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면서 불안하기는 한데 이 상황이 좀 웃긴다. 오늘 말할 용량을 다 못 채워서 지금 혼자 웅얼대며 채우고 있는 것인가.
그냥 불안을 잠시 미루고 즐기기로 했다. 다음 역에서 어떤 할머니가 승차하니 어서 오십시오 천천히 조심조심 손잡이를 꼭 잡으시고 앉으십시오 하니 할머니가 고맙다 한다. 다음다음다음 정거장에서 할머니가 내리니 천천히 내리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한다.
말투가 못나서 그렇지 나쁜 말은 없다. 응답 없는 승객들에게 지쳐서 그냥 혼자 할 일 하는가 보다 결론지었다. 중간에 신호등에 걸리니 다른 번호 버스 기사에게 창문을 열고 인사를 한다. 신호등 바뀌니 먼저 그 버스기사에게 먼저 가시라 한다.
운전을 험하게 하는 것도 아닌데 아마 많이 많이 지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말투가 부드러운 것이 아니라 내릴 때 미소만 짓고 응답을 못해주었다. 막차가 아니라 그 기사의 피로와 승객의 안전이 좀 걱정되긴 했다. 용기 내어 감사합니다 하고 크게 소리 내어 응답해 줄 것을 그랬나 싶다.
쌀쌀한 밤 기운에 옷깃을 추슬러 올리며 부지런히 집으로 갔다. 오래간만에 늦은 외출로 혼자 있던 반려묘가 왜 이제 오냐는 듯 반갑게 야옹거린다. 어쩌면 나의 반려묘처럼 그 운전기사도 외로웠나 보다.
야옹야옹 웅얼웅얼하는 것이 톤과 상관없이 소통하고자 하는 말이었나 싶다. 심심했구나 늦어서 미안해 혼자 있어서 무서웠구나 하면서 열심히 쓰담쓰담하고 안아주었다. 응답해 주니 금방 언제 외로웠나 싶게 부비부비하고 그르렁댄다.
일상적인 톤은 아니지만 각자만의 하소연 톤이 있는 것 같다. 자려고 드러누우니 어디선가 들려오는 변성기 아이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샤워하러 들어만 가면 있는 힘껏 노래 같지 않은 노래를 불러대던 아들이 생각난다. 저 아이도 아마 자신에 심취해 있나 보다.
버스기사나 저 사춘기 아이나 청취자는 생각도 않는 구여운 나르시시스트들이다.
하긴 나도 가끔 외로우면 집안에서 한 잔 마시고 막춤을 추며 가사도 다 기억나지 않는 노래를 마구잡이로 불러대는 날이 있다. 그때 곁을 따라다니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반려묘가 웃겨서 또 그러고 있는 내가 못나서 혼자 웃어대곤 한다.
그렇게 채워지지 않은 구석을 채우곤 한다.
그 버스기사도 그렇게 웅얼대며 빈구석을 채우고 있는 것이겠거니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