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과 공존
까치가 요란스레 울부짖고 있다.
왜 그러는 것일까. 자기들끼리 싸움이라도 하는 것일까. 산책하다 올려다보았다. 나무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올라가 있고 그 주위를 까치 한 마리가 짖어대고 있었다. 평소에도 공원에 나무를 잘 타던 공원고양이중 한 마리였다. 주위 나무를 둘러보니 까치집도 없다. 그런데 까치는 왜 저리 난리를 피우는 걸까.
까치 때문에 내려오지도 못하고 꼼짝 못 하는 고양이가 안타까웠다. 까치의 그 날카로운 부리에 쪼이지는 않을까 염려되었다.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뭐 하러 나무는 올라갔나 모르겠네 하며 누군가 고양이를 탓한다. 고양이들도 나무를 잘 탄다고 조금 크게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모여드니 까치가 떠났다. 지킬 둥지나 새끼도 없는데 소란을 피운 까치가 어딘가로 날아간 것이다. 까치가 없으니 그 나무 위에 고양이도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겠다 싶어 자리를 피해 주었다.
요새 대통령 탄핵 찬반으로 정국이 난리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도 그 정국 속에 직접 끼어들어가 강경해지는 태도들을 보며 깜짝 놀라곤 한다. 그의 의견이 궁금한데 그는 의견은 필요 없다는 듯 결론만 가지고 편을 가르고 적대하거나 끌어들이고 있었다.
의견이 필요 없다면 편 가르기 위해 동원될 인원 채우기 인가.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들은 무엇을 위해 저러는 것일까. 탄핵 결정이 나기 전에 여론몰이를 하기 위해 소몰이하듯 몰아가는 그들의 거친 소리들이 과연 민주주의를 위한 것인가 싶다.
크게 소리 내지 않는다고 의견이 없는 것이 아님에도 없다고 생각하는 그들만의 감정들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불안하다. 대화가 필요 없는 아우성은 폭력만 존재하게 되지 않을까.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폭력은 그 크기가 어느 정도일까. 그것은 조용히 지켜보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피해이기에 불안하다.
비상계엄 선포가 있고 얼마 되지 않아 철회되는 해프닝이 발생했을 때에야 대통령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이 선출되어 존재함에도 그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아서일까.
용산에 따로 자리를 만들어 거기에서 집무를 한다는데 그는 대통령이 아닌 그냥 이전의 그가 검사였듯이 검사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그는 용산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왜 계엄을 선포했을까. 비상계엄 철회 이후 연달아 나오는 담화문을 들여다보았다.
방해공작이 너무 많아 일을 못해 먹겠다는 그의 투정과 마지막 뒤엎어버리겠다는 오기의 계엄이라는 카드였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대화를 할 줄도 모르고 막무가내식 말과 변명들이 실망감을 쌓아가고 있었다.
실망을 넘어 수치스러워졌다. 국민을 대표하는 그가 국민에게 똥물을 끼얹는 느낌이었다. 저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던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듯하다.
아무리 정치 초보라도 그렇지 사회생활을 해온 검사인데 검사 노릇만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생각이다. 그 검사의 가치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그가 불쌍하다. 그냥 검사만 하면 되었을 그릇인데 대통령 자리에 앉혀 놓으니 스스로 자폭하고 있는 것이다.
저렇게 앞뒤 구분을 못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오로지 자기만 옳다는 것이 문제이다.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니라 정부를 이끌어가야 하는 데 다 거추장스럽다고 쓸어내버리려고만 한다. 그가 대통령이 아닌 검사였다면 이리 거론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만 똑똑하고 나머지는 다 멍청하다고 믿고 있는 그는 정말 어리석고 무능해 보인다. 그리 잘났는데 왜 하소연하는 것일까. 계엄이 성공하지 못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 것이 억울할 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어린아이에게 총을 맡긴 셈이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 했는데 난세만 만들 뿐 영웅은 없다.
대통령 부재감은 그 이전에도 느꼈던 것 같다.
박근혜 정부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조용했다. 가끔 외국에 나갔다 왔다고 매스컴에 뜰 때 저 사람이 대통령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외국에는 무엇을 하러 간 것일까. 그녀의 어깨에는 정부가 없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대통령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아무 느낌이 없는 그냥 개인이었다. 그런데 이번 윤석열 대통령도 그러하다. 대통령이라 하니 대통령인가 보다 인지할 뿐 그의 어깨에도 정부가 없다.
대통령의 어깨에 정부가 없다면 정부는 어디에 가 있는 것일까.
대통령만 부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도 부재하는 것 같다.
그 속에 여우가 사자가면 쓰고 기세등등 만용 부리듯 혼란만 있다.
정부가 없으니 길 잃은 아이처럼 국민들이 혼란 속에서 이리저리 휘말려 이용당하고 있다.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고 무엇 때문인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네 편 내편 하면서 감정의 골을 파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니 대화는 전혀 할 수 없게 되고 폭력적 말들만 오고 갈 뿐이다.
어디까지 갈 것인가 불안하다. 어느 골에 물길을 내어 잘 풀어낼 것인지 지켜보고 있다. 흙탕물에 빠지지 않고 그 물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리는 국민들이 대다수임을 우리는 안다. 그럼에도 그들을 무시하려는 목소리 거센 자들의 소란이 잠잠해지기를 바란다.
대화를 하는 여론이 형성되기를 바란다. 소리만 지를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말을 들어봐야 한다. 그리고 조목조목 대화를 통해 설득하고 설득당하고 납득하는 여유가 민주주의로 이어져가는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공존하는 것이다.
다르다고 틀린 것도 아니고 적도 아니다.
달라도 무엇이 다른지 알아보고 서로를 인정하면 우리는 공존할 수 있다.
함께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