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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을 때

반추

by 오순

실내가 고요하다. 물 따르는 소리, 공기 움직이는 소리가 신경을 간지럽히듯 한다.

사람의 소리보다 물질의 소리가 산만한 마음을 가라앉혀 현실 속에 있게 해 준다.

집안에서 침대에서 이불속에 있었으면 아마도 자신과의 갈등에 나가떨어져 하루 종일 쉬지도 못하고 하고 싶은 것도 하지 못하고 스트레스만 쌓아갔을 것이다.


밖으로 나오니 조금은 살 것 같다. 내 안의 비난 속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다. 그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괜찮은 척 더 나은 척 무엇이라도 시도하고 있으니 좋다. 결과에 대한 실망이야 있겠지만 아무것도 안 한 것보다는 낫다고 위로할 수 있어 다행이다. 남들과 부딪치는 신경들도 결국 스쳐 지나가지만 에너지가 방전되어 지치기 마련이다. 그래도 혼자 방 안에서 신경전 부리며 지쳐가는 것보다 낫지 싶다.


오늘은 무슨 일을 해낼까. 미리 목표 설정하지 않고 완벽 추구하지 않고 놀면서 일할 수 있을까. 놀듯이 작업을 하고 싶다. 주어진 일은 열심히 하는 데 즐기거나 놀지는 모르는 로봇형 작업자이다. 로봇형 작업은 즐기면서 하는 작업보다 에너지 소모가 엄청 심하다. 즐길 일을 생각도 못 할 만큼 지쳐버리게 한다.


시간이 흐르니 조용함을 벗어나 신경이 주위를 살피고 있다. 사람은 다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이 드물어 조용한 것이지 사람들이 조용히 한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만 있는데 한 사람이 전화 통화를 하고 핸드폰으로 방송을 스피커로 듣고 있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왜 거슬릴까. 아마도 그 사람의 개인적인 것들이 추측되기 때문에 흘려보내지 못하고 더 많은 에너지가 집중되기 때문이 아닐까. 개인사를 듣지 않은 것처럼 방어하려니 듣고 안 들은 척하는 이중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상대방은 당사자가 아니니 자신은 방출로 끝나지만 듣는 이는 방출된 그 소리를 듣고 해석까지 해야 되는 상황이다. 들으면 해석하고 분류하는 뇌의 자동 기능이기 때문에 막아지지가 않는다. 그것을 의식적으로 막아보려 하니 역부족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드디어 파면되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만장일치라니 안심이 된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는 정국을 불안스레 지켜보며 그래도 정의는 살아있다고 믿고 싶었다. 더 이상 소란 속에 휩쓸려 찬반 어느 곳에도 소란 보태지 않고 숨죽여 기다렸다.


기다린 보람이 있다. 만장일치가 아니었으면 좀 개운치 않았을 것 같다. 자꾸만 독일의 히틀러 시대가 떠오르곤 했었는데 이젠 안심이 된다. 개싸움을 하든 지랄을 하든 정치판을 조금은 여유롭게 지켜볼 수 있을 것 같다. 투표를 정말 잘해야겠다는 반성과 감시와 판단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다짐하고 다짐한다.


헌법재판소가 비상계엄을 막아준 것 같다. 1차는 국민이 막았고 2차는 헌법재판소가 마무리한 것이다. 시스템이 살아있고 체계가 있는 민주주주의 국가라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다양한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국 시스템이 마비되지 않고 정상적으로 작동하니 안심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큰 물은 잡았으니 잡다한 난류들이야 이리 철썩 저리 철썩 소란을 피워도 때가 되면 사그라지고 잡음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 소란들을 잘 이끌어나가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자유가 아니겠는가.


사소한 소란은 시간을 두고 평정되도록 지켜보는 것도 중요하다. 성급히 판단하려 하지 말고 그 소란을 지켜보는 인내가 필요하다. 모두가 떠들 때 듣는 이가 있다면 판단이 올바로 설 것이다.


듣지 않으면 판단할 수 없고 판단할 수 없으니 떠들어대는 것이다.

먼저 들어야 한다. 그리고 기다려야 한다. 기회를 놓치지 말고 말해야 한다.

듣는 자의 말은 모두에게 들리고 듣게 된다.


큰 짐 덜어냈으니 심사숙고하는 하루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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