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과 온라인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다.
멈추려고 해도 멈춰지지 않던 생각들이 멈춰져 있다.
이젠 생각을 하려고 해도 생각이 안 된다.
참 내 몸인데 말 안 듣는 자식처럼 맘대로 안 된다.
몸이 피곤해서 이러는 것인지 지루해서 이러는 것인지 모르겠다.
방전된 것 같다. 어떻게 충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럴 때 가장 좋은 휴식이 잠이 아닐까 싶어 자려고 하는데 제기랄 잠마저 오지 않는다.
하소연할 말도 메말라 있다.
적당한 때가 있는 것인데 아마도 그 적당한 때를 놓친 것 같다. 배가 너무 고프면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는 것처럼 성난 몸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모르겠다. 강제로 쉬도록 약을 먹어야 되나 알코올에 의존해야 하나.
다 싫다 한다. 돌아오려면 며칠 걸리겠다 싶다. 급하면 돌아가라 했는데 계속 전진을 외쳐댔으니 내가 내 몸이라도 일어서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왜 이리 허약하냐며 비난하고 싶은 데 더 큰 참사가 일어날까 싶어 참고 있다.
친구나 지인을 만나 위로받고 싶은 것도 거추장스럽다. 혼자 위로하듯 조용히 음악 들으며 혼술 할까 제안했는데 다 부질없다 한다. 인터넷 드라마 영화 서핑을 할까 하는데 것도 의미 없고 귀찮다.
그냥 멍하니 누워 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사람은 평생 동안 몇 시간을 누워 지낼까.
짧다면 무지 짧은 인생에서 어차피 죽으면 영원히 누워 있을 것인데 살아서 누워 지내는 것은 삶을 축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것에 어느 정도 동조하고 있어서 수면 시간 외에 누워 빈둥거리게 되면 스스로를 책망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제일 쉽고 경제적이며 유효한 것이 온라인상에서의 대화이다.
굳이 씻고 단장할 필요도 없이 컴퓨터나 핸드폰을 켜면 된다. 직접 마주하지 않으니 들어야 할 의무도 없고 반응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다.
할 말 없으면 완전한 단어를 구사할 필요도 없이 이모티콘이나 자음 등으로 대충 응답하면 된다. 상대도 대충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것을 굳이 해석하려 들지도 않을 뿐 아니라 만일 따지려 들면 핑계 대고 아웃하면 된다.
온라인상에서 대화할 때 얼굴을 마주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 느껴진 마음이 온전히 나만의 착각일까 아니면 그 짧은 글 속에 묻어 있는 것일까. 정확하게 구분될 때도 있지만 그것이 애매모호할 때가 허다하다.
대충 혼자서 뭐래? 하고 중얼거리거나 욕도 하면서 대화 창에는 그냥 ㅋㅋㅋ 하고 응답한다. 특정하게 지칭하지 않는 이상 읽는 이의 마음에 따라 감정의 강도가 달라지기도 하고 왜곡되기도 한다. 책임이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설명하고자 할 때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말이 말을 부르고 감당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원하지 않는 곳을 향하여 곤두박질을 친다. 그 대화에서는 어디까지 책임이 있는 것일까. 하긴 마주 보고 말을 해도 서로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아마도 감정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짧게 대화할 때는 유용한 심심풀이였는데 막상 말이 길어지니 말을 글로 묘사하는 것이 이렇게 토 나오게 힘들었는가 싶어진다. 급한 사람이 전화를 걸어 말로 대신한다. 말로 하면 무지 빠르게 끝날 일을 대화창에 입력하고 있으려니 환장할 일이다.
깨알같이 작은 글자로 가득 찬 사용설명서 읽는 기분이다. 말로 하면 금방 끝나고 명확해질 것을 글로 표현하면 빼먹는 것도 있고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 애매하기도 하여 반복하여 설명해야 되고 다시 물으면 성마르게 글이 튀어 오타투성이가 된다.
감정은 안개 같다. 너무 진하면 코앞도 보이지 않는다. 감정이 출렁거리면 당황하여 닥치는 대로 주워섬기게 된다. 그렇게 내뱉은 말은 책임지기 싫어진다. 자신에게서 떠난 말에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변명거리들만 남발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서로의 의도나 마음을 읽지 못하고 드러난 것들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게 된다.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해석하고 오해든 이해든 상관하지 않는다.
말이 많으면 마음은 떠난다. 말이 많아지면 혼란스러워진다. 말이 많으면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 그럴 때는 말을 멈추고 기다려야 한다. 마음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헤매거나 오해하여 상처를 주지 않게 된다.
나가 보지 않으면 밖의 생생한 공기를 느낄 수 없다.
일기예보는 예상할 수 있는 느낌을 생각하게 해 줄 뿐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온도가 다 다르다. 날씨도 사람마다 조금씩 다 다르게 느낀다.
대화는 오프라인에서 직접 마주해야 할 때도 있고 온라인상으로 편하게 할 때도 있다. 요즘은 오프라인을 부담스러워해 기피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될 때 그 어색함이라니 피할 데도 없고 감출 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하기 그지없다.
온라인 대화가 그리 오래된 역사도 아니 것 마는 예전에는 어떻게 매번 마주하고 살았을까 싶은 것이 꼭 옛날 옛날에는 하면서 옛날 동화이야기하는 기분이다.
편하다는 이유로 불편한 것들을 마주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데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난감한 상황에 직면하여 그 자리를 빨리 모면하고 싶어 안절부절못하다가 이야기가 계속되면 어느 순간 서로를 마주하고 이야기하고 웃고 하는 것들이 자연스러워진다. 서로 간에 온기가 이렇게 생생하니 좋은 것이었구나 싶다. 다음에 또 보자며 뿌듯하게 헤어진다.
아마 다음은 또 건너뛰기 십상이겠지만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지 싶다. 사람의 본성상 일부러 불편을 감수하려는 짓은 하지 않겠지만 등산을 하듯 여행을 하듯 실전이 진실한 삶일 수 있지 않을까.
산책하면서 마시는 공기와 집안에서 공기청정기가 정화한 공기를 마시는 것은 다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