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쏜살같은 시간

시작하자

by 오순

왜 이렇게 드러눕고만 싶은 걸까.

나이 탓일까.


시간이, 나만의 시간이 주어지면 엄청 많은,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시간을 갖는 꿈을 항상 꾸었고 사회에 얽매여 있는 것을 한탄하곤 했었다.

막상 시간이 주어지니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


막막하다.

그리고 내가 나이가 들 줄 몰랐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노쇠하고 변한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다.

시간을 필요로 할 때의 내가 그대로 있을 줄 알았다.


시간이 나의 적병이 될 줄 몰랐다.

이 적병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당황스럽다.

노력하면 극복이 되는 것일까.


이전엔 열정이 넘쳐나도 시간이 없어 실행할 수 없었고 이젠 시간이 넘쳐나는데 열정을 보듬을 에너지가 없다. 이 몸이 원망스럽다.

한창나이일 때 그냥 하고 싶은 것들을 열심히 해볼 것을 그때는 때가 따로 있는 줄 몰랐다. 주어진 생활에 충실해야만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책임이라는 둘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책임을 벗어나면 고통받을 가족 특히 나의 자식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해서 그들이 독립할 수 있을 때 벗어나서 내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학수고대했는데. 너무 탈진한 것인지 세월이 무심한 것인지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었다.


달라진 나를 받아들이기도 버겁다.

아마도 자꾸만 드러눕고 싶은 것은 이런 현실을 생각하고 싶지 않고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일게다.

도피하고 싶은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마주하고 있기만 해도 지쳐버린다. 방법이 없을까. 인정하면 될까. 받아들이면 지치지 않을까. 억울하여 받아들이기가 힘든지도 모르겠다.

억울하다 억울하다 울부짖어봤자 남아 있는 힘 있는 시간들이 사라지기만 할 뿐이다. 다시 부여받고 싶은 젊은 몸이 그립다.


그래도 하루 한두 시간 노력한다. 마음은 그때의 그 마음이기에 양에 차지 않지만 그래도 날마다 숨 쉬듯 날마다 조금씩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날마다 하는 것이 중요하다. 쇳덩이를 바위에 갈아 바늘을 만드는 늙은 도공 같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 나으리라. 시간은 많고 아무것도 안 하기에는 너무너무 긴 시간들이다. 무언가를 하기에는 너무너무 빠르게 흘러가지만 그래도 그 급류를 타려고 노력 중이다.


으 씨~~ 이렇게 피 터지게 살아야 되나.

시간만 주어지면 될 줄 알았더니마는 시간이 내 젊음을 에너지를 가져가고 있는 줄은 몰랐네그려. 오늘도 나는 나 자신과의 투쟁에서 조금씩 시간을 확보하고 있다.


어느 세월에 그것을 다 하려나 싶었는데 한 고랑 밭을 매고야 마는 할미 같다.

장하다 나.

주어진 시간이 다 내 것 같았는데 투쟁해야만 내 것이 되는 것이었다.


쉬운 게 없다.

이전에는 갖기만 하면 다 내 것이 되는 줄 알았다.

지금은 그림의 떡이다.


주어도 받아먹지 못하는 바보 같다. 준비된 자만 받을 수 있는 거였다. 준비하는 데도 엄청 오래 걸리니 누군가 가져가 버릴까 봐 눈앞에서 그냥 사라져 버릴까 봐 조급해진다. 그렇다고 어디에 보관할 수도 없으니 흘러가버려도 속이 쓰려도 참고 받아들일 그릇을 만들어야만 한다.


생각한 대로 산다고 생각을 못 하였으니 놓칠 수밖에 더 있나.

하나만 생각하고 나머지는 볼 생각도 없었으니 어리석은 나를 탓할 수밖에 없다.

탓도 어지간해야 탓을 하지.


쏜살같이 사라지려는 이 시간들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두 손 두 발 온 마음을 다해야 한다.

늦었다 한탄하면 진짜 계속 뒷북만 치게 된다.

지금 여기서 있는 그대로의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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