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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기억과 저장

by 오순

한 권의 책을 읽기에도 버거운 나이가 되었나.


욕심에 두 권의 책을 주문하고 설레며 기다렸다. 책을 받은 순간 뿌듯함으로 겉표지를 쓸어보고 어떤 것부터 읽어야 할지 잠깐 훑어본다. 차례에 꽃혀 한 권을 손에 들고 책상보다는 침대에 들어갔다. 서너 페이지 정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더 읽고 싶은데 내일의 할 일에 지장이 올까 싶어 자야겠다는 생각이 더 이상의 정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일에 대한 걱정은 핑계이고 아주 적은 정보만으로도 가득차버리는 얄팍해진 저장력 때문이다. 더 집어넣고자 하니 들어간 정보가 들어가고자 하는 정보와 부딪쳐 엉켜버린다.


벼락치기 밤샘공부를 하며 버티는 수험생 같다. 연달은 밤샘으로 들여놓은 정보들을 붙잡아 둘 여력이 없어 간신히 들여놓은 정보들이 슬슬기어나가 결국 시험 당일날 텅빈 머리로 시험을 망치는 수험생의 과부하 상태의 머릿속 같다.


머릿속이 가득차서 더이상 들어갈게 없다고 그만 자라고 아우성이다. 마음에 드는 책이 있을 땐 잠도 오지 않고 완독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던 스펀지 흡수력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나이가 배반을 하는 것인지 책이 배반을 하는 것인지 하루에 서너장밖에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마저도 며칠이 지나면 백지상태처럼 되돌아온다.


할 수 없이 메모를 하며 읽고 있다. 며칠에 걸려 완독하고 나면 가득한 메모로 뿌듯하다. 그 메모를 훑어보면 책에서 본 내용이라기보다 새로운 책을 읽는 느낌처럼 생소하다. 뭐야, 메모도 효과가 없다는 것인가. 왜 이러는 것인가. 퇴화중인가. 무엇이 남아 있을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뇌속이 무섭다.


읽고 싶은 것은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으니 기억력의 쇠퇴인지 정보의 과부하인지 모르겠으나 저장력 상관하지 않고 읽고 또 읽는다. 무엇을 기억하는지 읽고 나서 잠깐 생각을 해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억의 농도가 연해지지만 그래도 읽었다는 기억은 있기에 읽는다. 다시 읽고 싶으면 그냥 다시 읽는다.


집중하지 못하는 것일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뇌의 한계량이 작아지는 것일까. 모르겠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다르다. 미래의 나도 지금의 나와 다를 것이다. 그래도 지금 현재 이곳의 나에 맞춰 살아가야 하겠지. 다른 나를 보면서 무척 놀라고 당황스럽고 무서웠는데 그런 나에게 적응하고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


인터넷 정보는 유용하고 많다. 처음엔 그것을 다 읽어내느라 검색에 검색을 연달아 하고 보다 보니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그래서 요즘엔 검색해서 앞에 몇 줄 요약해서 읽고 멈춘다. 멈추지 못하면 하루종일 인터넷 들여다 보며 다른 것을 못하게 된다.


많고 많은 정보이지만 너무 많으니 머리가 아프다. 그렇다고 다 소화되는 것도 아니다. 배고플 때 밥을 먹듯 필요한 것만 섭취한다.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백과사전 같은 인터넷 속의 정보를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너무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인터넷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여태 해왔던 일들도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지 않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재정비를 한 후에 하게 된다. 그냥 하면 반만 기억나고 반은 망칠 것 같은 불안에 휩싸여 있다. 아무것도 혼자서 하지 못하는 바보가 되어가는 것 같다.


편리한 인터넷이고 유용한 정보가 공기처럼 넘쳐나 감사한데 그것들을 사용하는 나는 점점 더 무능해지고 있어 불안하다. 기억을 하지 않는다. 아니 기억하지 못한다. 언제든지 불러낼 최고의 정보가 인터넷이 있기에 굳이 머릿속에 집어넣지 않는 것 같다.


머리를 사용하지 않아 퇴화되는 것 같다. 이래도 괜찮을까. 나중에 검색하는 손가락만 남아 뇌에게 명령하게 될까. 인종이 변할까. 커다란 뇌를 가진 지금 인류는 도태되고 손가락만 커진 인종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인류가 될까. 그때 그 인종은 사람일까 원숭이 일까.


생각하지 않는 사람 아니 생각을 못하는 사람을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편리하게 사용하던 인터넷이 나의 뇌가 되어버렸다. 유용하지만 주는 대로 받아야 되는 인터넷이 끊기면 탯줄 없는 아기가 되는 것이다. 인터넷에 매달려 사는 기분이다. 언제부터 난 이렇게 취약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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