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가!
수영장 내에 가장 느린 할머니가 말한다.
가라고요, 잠깐만요 하고 미소 지으며 답하고 숨을 한번 고른 뒤 출발한다.
숨을 제대로 고르지 못하고 출발해서 숨이 좀 차다. 천천히 가면서 숨을 고르면 된다. 천천히 가도 그 할머니는 어차피 너무 느려서 나를 따라잡지 못한다.
나에게 먼저 가라고 양보한 할머니를 기다리게 하는 것은 배려해 준 데 대한 보답이 아니라는 생각에 바로 출발한다. 쉬지 않고 수영하는 할머니라서 멈추고 먼저 가라고 한 몇 초가 상당한 배려인 것이다.
화가 난 것처럼 무뚝뚝하게 가라고 하던 할머니 표정이 많이 누그러진 게 보인다. 그리고 주위 상관하지 않던 할머니가 주위를 살피고 먼저 가라고 하는 것이 여전히 웃지는 않기 때문에 무뚝뚝하게 보일지라도 따뜻한 미소가 느껴진다.
어쩌면 주위를 살핀 것이 아니라 살펴보았자 너무 느려서 민폐이지만 어쩔 수 없으니 알아서들 하라고 쉼 없이 자신만 바라보며 수영을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 연세에 자신의 스텝으로 꾸준히 열심히 수영하는 모습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수영 시작했을 때 생각보다 힘과 근력이 없어 너무 느려 자신에게 화도 나고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남들에게 매번 따라 잡히고 의도치 않게 나를 앞지르려는 다른 수영자들에게 자주 머리통 맞고 팔다리 맞았었다. 그리고 속도 때문에 중간에 눈치 보느라 멈춰서 사람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었다. 그 느림에 대한 기억이 그 할머니의 느림과 겹쳐져 말이 아닌 감정이 밀착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할머니 역시 무례하지 않으나 자신의 위치 때문에 화가 좀 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치지 않고 위험하지 않게 빠르게 앞지르지 못할 바에는 앞서려 하지 말고 피해 가거나 중간에 턴을 하던가 하면서 요령껏 수영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틈새를 이용해 수영을 하니 나름 패턴이 만들어졌다.
그 여유가 할머니한테 전달된 것인지 어쩌다 다른 수영자와 부딪치면 무조건 사과부터 하는 나의 태도 때문인지 할머니의 태도가 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하는 수영에서 다른 이들과 같이 수영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된장국 내밀며 '먹어!' 하는 것 같은 '가!' 이 한마디가 어찌나 구수하던지 물 공포증 심한 내가 수영하면서 미소를 짓고 있다. 오래된 다른 수영자들이 요란스러운 인사와 수다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인사도 하지 않는다. 그 할머니 수영자의 무뚝뚝함이 편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눈이 마주쳤는데 인사하지 않아도 말을 걸지 않아도 인사한 것 같고 말을 한 것처럼 느껴지니 나만 편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