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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다

하루하루를 간다

by 오순

각자만의 길을 선택하여 가고 있다.

비겁했다.

각자 알아서 가지만 돈이 궁했다. 그것을 솔직히 인정해야 했다. 짐은 되기 싫고 부양은 받고 싶고 자존심은 유지하고 싶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게 맞는데 아닌 척 상대가 먼저 말해주길 바란 것이다. 아닌 척 슬쩍 묻어가려고 유도한 것이다.


비겁했다. 상대가 선을 그어주니 서운하다 못해 화가 나지만 더 이상 들이대지 않은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가. 엄마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포장하려고 끝까지 버텨보았지만 비겁했다. 솔직히 독립적으로 잘 가고 있는 자식이 대견하고 진정 부모의 걱정의 짐을 덜어준 것이다.


현실적 능력도 안 되면서 걱정만 앞세우는 부모가 되지 않으려 쿨한 척했으나 이것 또한 비겁한 것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걱정거리만 안고 부모 노릇한다고 생색내며 부담 주는 짓거리를 하지 않는 것만 해도 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잘하다가 어제는 혼자 감정에 휘둘려 터뜨렸다. 그래도 마지막 선은 지켜내 다행이다. 당장 어떻게 해결되는 선택을 한 것이 아니기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잘 나가길 나에게 자식에게도 강력히 빌어본다. 자식의 말마따나 지금은 닥친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면 된다. 미래를 보는 것보다 하루를 잘 사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다 보면 포기하지 않고 가고 있는 우리가 보일 것이다.


중간중간 주저앉으려는 마음을 둘러업었다. 마음을 쳐들어도 다시 주르륵 흘러내리려 한다. 집어던지고픈 마음 반 안고 가려는 마음 반이다. 다 놓아버리고 싶다. 뭘 붙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붙들고 있는 게 맞는 것인지 놓아버려야 다른 것을 잡을 기회가 올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불안해도 괜찮은 것일까.


오늘도 여전히 바람은 차갑다. 마음이 불안 속에 있으니 더 차갑게 느껴지는 것인가. 모두들 화사한 봄꽃을 맞이하러 나왔다. 꽃은 활짝 피었으나 움츠려든 몸은 펴지지 않는다.

수영 갔다 온 뒤끝이라 턱 받친 손가락에서 익숙한 수영장 소독 내가 연하게 난다.


시작은 했으나 멈춰 있는 것 같다. 자꾸만 이것을 해서 뭐 하리 하는 자체 방해공작에 힘을 허비하고 있다. 자신과의 싸움이 제일 힘든 거 같다. 비난을 해도 자신이고 그 비난을 감수해야 하기에 감정이 아닌 이성적 비판을 해야 한다. 감정에 휘말리면 우울증의 나락으로 빠져들어 헤어 나오기 정말 힘들어진다.


이성적으로는 다 알고 있고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알고 있다. 다만 감정이 넘쳐나서 당황스럽고 감정 때문에 나아갈 길이 참담해졌을 뿐이다. 그뿐이지만 자신의 감정이기에 남에게 권고하듯 사뿐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알면서 못 빠져나오니 답답하고 화가 난다. 누군가 이해해 주기를 바라고 어깨를 두드려주며 그럴 수 있다고 위로해 주며 곁에서 기다려주었으면 좋겠다.


막상 누군가 그리해 준다 해도 부담스러워 또다시 구렁텅이로 깊이깊이 숨거나 도움을 받고도 일어서지 못하는 자신을 더 비난하거나 도움이 있어도 남이 대신해줄 수 없으니 스스로 걸어야 한다는 것이 싫어서 더 투정 부릴 수도 있다.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그냥 혼자 허우적거리다가 더 이상 내려갈 곳 없이 추락했을 때 할 수 없이 올라오는 게 뒤끝 없이 제일 깔끔할 것이다. 그렇지만 혼자 다 해내려니 너무 외롭다. 외로움은 피하고 싶다. 외로움은 그냥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니 없어도 되지 않겠는가.


꼭 무거운 짐 진 자의 등에 어차피 무거우니 하나 더 얹는다고 더 무거워지지 않는다며 주저앉게 만드는 얌체족이 외로움이다. 그래도 그것은 어떻게 떼어낼 수가 없다.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양가의 감정인 것이다. 그냥 받아들이니 그런가 보다 싶은 것이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


이젠 알 것 같다. 내 무게는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것을. 천천히라도 손 놓지 말고 가야 한다는 것을. 자식에게 변명하듯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저 묵묵히 가면 된다. 자식들이 각자 알아서 살아가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도 남을 일이다. 더 이상 불어나지도 않는 생활비 계산하지 말자. 불안을 안고 가자 안정이란 없다. 무조건 피하고픈 감정에 휘말리지 말자. 그 감정은 불안을 덜어내고 싶은 비겁함에서 나오는 가짜이다. 난 할 수 있다. 이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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