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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소음화

집중

by 오순

왜 저 노인네는 여기 도서관 북카페에 와서 자는 것일까. 그것도 매일 출근하듯이 와서 오전 내내 자고 간다. 다행히 코는 골지 않고 킁킁대는 소리와 자면서 내는 숨소리가 좀 크게 들린다. 사연이야 있을 수 있지만 창가 쪽이 안면 까면 잠자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오늘은 네다섯 번만에 커피머신이 캡슐을 인식해서 커피를 마실 수 있어 다행이다. 커피만이 잠을 쫓아내고 느슨하게 늘어지는 몸을 긴장시켜 주는 데 최고인 것 같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수영도 강하게 해서 도서관에서 잘 버틸 자신이 없었는데 커피 덕을 보고 있다.


가만히 앉아 작업해야 하는데 자꾸만 나가 놀고 싶은 마음은 왜일까. 막상 나가면 남들한테 맞추느라 편하게 노닥거리지도 못하는데 노는 것에 대한 환상이 좀 강한 것이 아닐까. 연휴 시작이라서 오늘은 어떨지 모르겠다. 어제까지 사나흘 너무 힘들어서 수영을 살살해야지 했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더 빡시게 했다. 청개구리도 아니고 너무 피로해지니 무리하지 말고 대충 하자 했는데 반대로 했으니 잘 버틸지 모르겠다.


유아풀에 어른들과 아이까지 등장하여 평영연습하기가 복잡해져 십여 분 정도밖에 연습하지 못하고 레인에 들어왔다. 레인에도 사람들이 너무 많고 느려도 너무 느린 두어 분 때문에 레인에서 수영자들이 정체되어 걸어 다니고 있었다. 겨우 수영을 시작해도 반바퀴도 못 가 턴하다보니 답답하여 중급레인에 들어갔다.


거기서 다른 수영자들 속도가 어쩔지 몰라 무조건 빠르게 팔다리를 저어 자유영을 하였다. 배영은 시도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십여분 자유영하다가 노인분들이 빠져나가는 삼십 분이 되어가서 다시 초급레인으로 들어와 배영을 했다. 중간에 평영도 조금씩 시도하는데 마음이 급해서 더 잘 안 된다. 마음을 준비하고 작정하고 평영을 해야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역시 커피가 정신을 차리게 하는 데는 최고인 듯하다. 어제까지 비몽사몽 했는데 오늘은 아직까지 괜찮다. 아니면 어제 푹 자서 괜찮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젯밤 꿈에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열심히 구상하고 기록하고 있는 내가 어설프게 의식이 되어 잠에서 깼는데 도로 잤다. 그동안 잊어버릴까 아까워서 대충 메모하고 잤는데 아침에 다시 보면 이게 뭔가 싶고 역시 꿈은 꿈일 뿐 현실에서는 써먹을 게 없다는 허탈감만 남았다.


피곤한데 중간에 깨었다 다시 잠들면 더 피곤해지곤 했다. 어차피 잠에서 깨어 일어나 끄적여보았자 아침에 다시 확인해 보면 꿈에서처럼 생생하지가 않아 실망만 할 것이니 잠이나 계속 자자 하며 그냥 흘려보냈다. 역시나 생생한 느낌만 있을 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꿈에서 성공한 기쁨에 한바탕 가슴이 뛰었다고나 할까. 생각나지도 않는 꿈 아까워하며 억지로 기억해 내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미워한 이유는 모르겠고 미워했던 느낌만 남아 있는 것처럼 아까운 느낌만 남아 있다. 꿈속에 꿈을 기억해 내 실현해 내면 성공할 수 있을까.


핸드폰 소리가 조용한 실내에서 작지만 계속 들린다. 고개를 들어 살피니 노인네가 잠에서 깨어나 구부정한 엄지 손가락으로 눌러대며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고 있다. 왜 이어폰을 꽂고 시청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꽂았는데 너무 크게 들어서 밖으로 소리가 새는 것일까. 가서 뭔가를 요청하기도 귀찮고 조용히 해달라 할 근거도 없기에 신경을 둔하게 만들어 본다.


노인네의 핸드폰 잡음보다 반대편 대각선 앞에 고시생의 곤두선 신경이 더 나를 힘들게 한다. 누가 먼저 떠났는지 모르겠으나 어느 순간 둘 다 퇴장하고 없다. 그 뒤를 이어 들어온 사람들이 내는 소음들이 이어진다. 들고 나는 곳이기에 소음은 끊임없이 발생한다. 그것에 신경을 길들여야 버틴다.


집중한다는 것은 순도의 고요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소음을 백색소음처럼 만들면 어느 정도 집중할 수 있다. 잘 되는 때도 있고 잘 안 되는 때도 있다. 고음이 아니면 잘 되는 것 같다. 공존한다는 것은 서로의 소음을 백색화 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은 아닐까. 뒤늦게 등장한 젊은 여자가 내 뒷자리를 선택하더니 엄청난 소리를 내며 블라인드를 걷어올리고 의자를 끌어당기고 거친 발소리를 내며 커피머신에서 물을 받아 오고 있다.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돌아다본다. 방향이 내 쪽이어서 애매하다. 전화까지 원음으로 받고 있다. 자신만 존재하는 듯하다. 기존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못하는 것 같다. 이건 백색화 하기 좀 힘들다. 투명화해야 하나. 나의 전화기에서 진동소리가 들린다. 실수로 전화기를 책상 위에 놓쳤다. 소리가 좀 크게 들린다. 하나도 미안하지 않다. 적대시까지는 아닌데 아마도 본능적으로 무시하고 있나 보다. 의식적인 선택이 아닌 무의식적인 선택이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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