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연휴 중간 일요일이다.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거리가 조용하다. 사방으로 밀집해 있는 회색 주택가 빌라 옥상에 햇빛이 반짝거리고 있다. 어제 비가 와서 미세먼지를 쓸어내려 공기가 쾌청할 것이다. 혼자 남아 있는 것이 싫은 지 집사 주위를 맴돌며 놀아달라 냥냥 거리는 반려묘의 마음이 안쓰럽다.
도서관 북카페 가려고 준비하고 오픈 시간에 맞추어 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간만에 사나흘의 긴 연휴라 날씨까지 맑아 모두들 어딘가로 소풍이든 여행을 갈 것이다. 어린이날 전날이고 대체휴일까지 주어진 연휴인데 설마 도서관에서 공부시키는 부모는 없으리라. 아마도 오늘 도서관은 한가할 듯싶다.
Hans Rosling의 [FACTFULNESS(사실충실성)]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내가 그토록 원하였던 객관성과 일치하는 내용들이다. 나는 생각만 했고 그러지 못한 세상을 탓만 하며 구겨져 있는 동안 한스 로슬링은 생각을 구체적화 시켜 데이터를 찾고 연구하여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하였다. 누구나 볼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하나의 집을 지은 것이다.
생각만으로 세상은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구체화시켜 내놓고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육십 평생을 원하는 것 하나 이루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스스로 개척하고 만들어나가지 못하고 방해물에 대한 탓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이제 많이 늦었지만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겠다. 세상은 나아가고 있었지 내가 퇴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일등으로 도서관에 도착했다. 정기적으로 출근하듯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선다. 커피머신도 여러 번 시도 끝에 캡슐을 인식해 커피도 내렸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마음만 잘 다스리면 된다. 일단 커피부터 마시자. 어제 서가에서 찜해 놓은 다른 책을 꺼내 들었다. Susan Cain의 [Quiet] 번역서이다.
오백여 페이지의 두터운 책이다. 책도 읽고 싶고 할 것은 많고 이 책을 빨리 읽어야겠다. 대충 읽어서 그런지 내용이 흡수되지 않는다. 요점만 파악하려 하는 독서는 독인 것 같다. 우연히 펼친 페이지에서 공감을 얻어 처음부터 읽고자 하였으나 너무 양이 많고 쓸데없는 부연설명이 많다는 생각에 서너 줄씩 묶어 읽어 내려가다 보니 머리만 띵하고 처음 공감되었던 만족도가 추락하고 있다. 여기서 잠깐 멈추자.
공기가 텁텁하여 짜증이 난다. 창가 쪽 구석자리는 신경이 분산되는 것을 막아주어 집중하기 좋은 자리이기는 하나 두 면이 거대한 유리창으로 되어 있고 그 유리창에 햇빛이 적나라하게 내리쬐어 그 열기가 바로 쏟아져 들이마시는 공기가 후덥덥하다. 창문을 조금 열어놓아도 열기로 데워진 건조한 공기를 들이마시기가 힘들다. 몸이 늘어지고 커피를 마셨는데도 졸리다.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할 것 같다.
어제보다 더 몸이 무겁다. 잠도 많이 잤는데 졸리다. 생각과는 정반대이다. 왜 그러는 것일까. 왜 집중하여 즐겨 작업하지 못하는 것일까. 열어 놓은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상쾌하고 시원하다. 밖에는 바람이 불고 시원한가 보다. 여기 실내 공간이 답답한 것 같다. 괜히 자리를 옮겼나 싶다. 살짝 고개만 들어도 보이는 반대편 고시생이 영 불편한지 신경 쓰이게 한다.
내 맘인데 거슬리면 집에 가던지 하는 맘이 좀 있어 버티고 있다. 다시 옮기기도 거추장스럽다. 집중이 잘 되고 작업이 잘되면 옮겨 보겠는데 이리 가나 저리 가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 그냥 뭉개고 있다. 알라딘 사이트에 들어가 저서를 구입했다. 연휴라 오늘이 4일인데 7일에 배송된다 한다. 급한 것은 아닌데 늦게 온다 하니 재미는 없다. 빨리 오면 그만큼 기대치가 있어 기다리는 설렘이 좀 있는데 늦게 온다 하니 빨리 보고 싶은 마음 충족이 안 되어 별로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예전 같았으면 서점에 달려가서 돈을 좀 더 주더라도 직접 구매하는 기쁨을 만끽했을 터인데 하루이틀 늦어져도 어차피 하루이틀 만에 다 읽지 못하고 며칠씩 걸려 읽을 거라서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에는 마음에 꽂히면 바로 사서 완독하는 습성이었는데 이제 그 완독력이 완연히 떨어져서 속도도 늦추고 빠름도 즐기지 않게 되었다. 인터넷으로 사야 적립금도 붙고 세일도 받을 수 있어 더 유익하다. 연휴만 아니었으면 내일 바로 도착할 것인데 아쉽긴 하다. 연휴 동안 읽은 책은 여기 도서관에서 찜해 집에 갖다 놓았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필사도 거의 끝나간다. 쓸수록 글로 그림을 그리는 저자의 집요한 표현력과 끈기에 새삼 성마른 나의 마음을 달래보곤 한다. [채식주의자]는 다른 저서 [검은손]에 비해 읽기도 힘들었지만 필사도 힘들었다. 아마도 [채식주의자]가 소설이라기보다는 현실 속 세상처럼 더 적나라하게 실감 나서가 아닐까 싶다.
삶이 다양하고 사람들도 다양해서 오후가 되니 한두 팀 아이를 동반한 부모가 등장한다. 열심히 공부를 시킨다. 예상을 뛰어넘어 놀기에 집중할 아이가 연휴에도 공부하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가 붙잡고 산수를 가르치고 있고 엄마는 딸을 붙잡고 국어를 가르치는 것 같다. 아이들은 몸을 비비 꼬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부모를 따라 열심히 하고 있다. 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학습하는데 굳이 도서관에 온 이유가 있을까. 집에서 하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다 큰 지금 과거를 잊어버려 이해와 공감이 훅 떨어진 게 느껴진다.
부모 되는 것은 항상 어려운 것 같다. 세상의 요구에 맞추어 아이들을 이끌기가 쉽지 않다. 아이답게 키워야 되고 미래의 성인을 위한 토대도 마련해 주어야 하고 일도 해야 한다. 이런 복잡함이 고단했던 것 같다. 성인으로서 누려야 할 것들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의무와 책임에 얽매어 꾸역꾸역 살았던 시절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크고 자신의 길을 가는데 부모는 늙어버려 갑자기 추락한 기분이다.
그때는 몰랐다 늙는다는 것을. 아이를 키우고 나면 그대로 있을 줄 알았다. 서서히 나이 든 것이 아니라 갑자기 훅 하고 무너진 느낌이라 적응하기가 힘들다. 몸은 서서히 나이 들어가고 있었는데 마음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바빠서 그랬는지 인정하고 싶지 않아 회피했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뒤통수 맞은 듯 세상의 중심에서 확 떠밀려 튕겨져 나간 것 같다.
아웃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어 상대 없는 분노를 품고 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고 살아가고 있다. 서글프지만 받아들이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준비하고 알뜰하게 살 것을 하는 회한이 밀려온다. 뭘 알아야 준비도 하지 뭘 더 살뜰히 산단 말인가 그런 여력이 있었던가 싶다. 그냥 열나 열심히 살자. 휴식시간인지 하나둘 나가고 조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