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하는 나
두세 시간은 잔 듯하다. 불을 끄고 눈을 감았는데 잠이 오지 않아 귓가에 앵앵대는 모기 소리가 선명하다.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두어 마리 잡았다. 핸드폰을 플래시를 끄고 눈을 감았으나 여전히 잠이 오지 않는다. 밤이 무섭다. 잠은 오지 않고 체력이 딸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있어도 못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밤 시간이 엄청 길고 두려워진다.
버티기 작전으로 이리저리 뒤척이다 얼결에 잠이 든 것이 새벽 세시가 넘어서인 듯하다. 이렇게라도 잤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겠다. 새벽 5시에 눈이 떠져 다시 잠이 오지 않는다. 그냥 7시까지 자면 좀 괜찮을 것인데 정신이 말똥말똥하다. 아마도 잡생각들이 통제가 안 되어 다시 잠에 못 든 것 같다.
꿈속에 남자배우가 나타나 나한테 와인을 권했는데 거기에는 약간의 섬씽이 깔려있다. 처음엔 나였는데 점점 내가 아닌 예쁘고 젊은 나 같지 않은 나다. 그 와인을 마셔보기도 전에 깨고 말았다. 아직도 마음은 청춘이고 여자인가 보다. 꿈속의 그 배우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검색해야 한다. 검색도 뭐라도 생각나는 게 있어야 검색을 하지 얼굴만 생각나서 검색할 수도 없다.
잘 생긴 훈남은 아니고 성격파 배우이다. 배우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내 안에 부정만 하던 여성성이 살아 있다는 게 신기하고 누구에게 알려지면 주책이라 하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꿈인데 뭐? 나만 아는 내 꿈속인데 뭐 어쩌라고 하는 심정도 솟는다. 생각이 마음이 투명하게 보이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나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만 몰랐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할머니라고 이젠 여성성을 부정하지 않아도 저절로 사라졌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렇지만 평생을 안고 살아온 나의 정체성의 일부가 사라지겠는가. 육체는 비록 노화로 들어섰을지라도 시든 꽃도 꽃인 것이다.
늙어가는 성의 정체성을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보지만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감추려 하고 부정적으로 보려 하는 것은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고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었나 보다. 나는 인간이기도 하지만 여성이기도 하다.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 하나만 주장하는 어리석은 인간이다.
사회적 인식에 더 이상 얽매어 힘들어지고 싶지 않아 버려버리고만 싶었던 여성이라는 역할 때문에 그냥 나를 부정한 것 같다. 그냥 자연스럽게 나를 인정하고 편하게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겠다. 여성으로서 나를 억제하니 긴장이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 다가오면 경계를 하고 있는 내가 보인다.
생활에 끌려다니지 않기 위해 특히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연애라든가 결혼이라든가 다른 가족사에 얽혀 내 시간들을 더 이상 쪽 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여성성을 버려버리고 무시하려 했다. 그런데 그럴수록 더 의식이 되고 부각되는 것 같아 불편하였다. 그것이 꿈속에 까지 나타나 여성이라는 것을 과시하고 있다.
자려고 하면 더 잠이 오지 않듯 부정하니 더 눈에 띄고 두드러진다. 어떻게 해야 하나. 꼭 성이 나를 옭아맸다기보다는 사회가 나를 그렇게 몰아간 것이다. 하긴 그 성의 역할이 약점이 되고 시발점이 된 것은 사실이다. 부정하기보다 편하게 받아들여 이용당하지 않게 스스로를 즐길 방법은 없을까. 억압한다고 있는 사실이 묻히거나 없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부각되거나 곪아터지거나 한다. 그러기 전에 인정하고 구체적인 대상으로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하면 되지 않을까.
자식들은 다 성장하여 제 갈길 가고 있고 황혼이혼으로 자유인이 된 이 마당에 한마디로 연애하는 섬씽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으나 그 외 동거라든가 재혼이라든가 하여 가족사로 이어지는 사회적 역할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이 마음대로 될지 모르겠으나 마음은 그렇다.
내 마음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타고난 호르몬의 강력한 역할 때문임을 안다. 그것이 무서워 아예 발을 담그지 않으려 애쓰는 중이었다. 자유 시간을 마음껏 나를 위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쓰고 싶어서이다. 어머니, 아내라는 길들여진 사회적 역할 때문에 습관대로 끌려다니며 잃어버린 중장년인데 후반부 나머지 인생도 그런 것에 낭비하고 싶지 않다.
아마도 사회적 역할의 습성을 벗어날 자신이 없기에 그런 환경을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 여겼는지도 모른다. 난 지금 여성으로 살기보다 나로 살고 싶다. 그래서 고군분투 중이다. 사회적 역할과 싸우지 않고 피하는 것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거기에 아예 나의 얼마 되지 않는 에너지를 뺏기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예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는 중인데 내 본능이 나를 건드는 것 같다.
구체적으로 뭘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숨통은 트이게 해 달라는 신호인 듯하다. 참 감당하기 힘든 호르몬이다. 이렇게 계속 무시하다가 어떻게 뒤통수 맞을지 몰라 슬며시 내 안을 들여다본다. 너도 나를 좀 봐주면 안 될까. 그동안 긴 세월 수많은 시간을 너 호르몬에 투자하였으니 이젠 좀 나에게 자유를 줘도 무방하지 않을까. 타협 좀 하자고 말을 건네는 중이다.
사회와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호르몬과의 투쟁인 것이다. 투쟁이기보다는 대화와 협상 중이다. 이번에는 마지막 남은 후반기를 허방짓거리 안 하게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게 호르몬으로부터 그로 인해 발생되는 사회적 관습으로부터 나를 지켜내고자 한다.
여행하듯 세상은 그저 눈요깃거리 정도로 즐기고 나 자신을 탐색하고자 한다. 그동안 방치한 나의 삶을 제대로 나만을 위해 살아보고자 한다. 기회가 왔을 때 회피하지 않고 나를 정면으로 지켜보리라. 비록 어떻게 해야 되는지 세세한 것들에서 중구난방 헤매고 있을지라도 나를 놓는 일은 없도록 꼭 나를 붙잡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제2의 인생을 사는 나의 목표이다. 기회가 왔을 때 다시없을 것처럼 자유스러운 내 시간을 나를 위해 쓰겠다. 불면의 시간도 나만의 시간이었나 보다. 그 불면의 시간 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떠오른 것은 나를 위한 것들이었나 보다. 좋은 것만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구나.
거부하고 피하고 싶었던 것도 나를 위한 것이었구나. 내가 중심을 잃지 않으면 모든 것이 나를 위해 회전하고 있구나. 지구가 자전하듯 나도 자전하는 것일까. 나를 찾아 뺑뺑이 돌 듯 뱅뱅 돌아도 결국 나로 돌아오는 자전이다. 지나온 것들이 비록 지난하고 힘들었을지라도 결국 나로 돌아오는 과정 중의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가보지 않은 길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가본 길은 앞으로도 쭉 이어질 나의 길이다. 내 길에서 변화를 주도하며 살아가보자. 잠을 못 잤다고 몸이 좋지 않을까 봐 불안해했는데 내가 못 본 나를 살피느라고 못 잔 것이니 쉬엄쉬엄 자다 가다 다시 쉬어가며 가면 되지 않겠는가.
숙면도 불면도 다 내 길을 가는 과정이었구나. 운동도 하고 밥도 먹고 하고 싶은 것 하다가 몸이 자고 싶다 할 때 자자. 미리 건강염려증으로 불안해하며 자려고 억지로 애쓰지 말자. 자연스럽게 몸이 준비되었을 때 자자. 나의 몸의 순환주기가 변하였음을 받아들이고 적응하자. 이것이 나를 위한 시간을 유용하게 쓰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