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끊임없이 자기를 터치해 달라고 종종종 따라다니는 반려묘이다. 사람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그것을 아무 때나 내색할 수 없어 참는 것은 아닐까. 오늘은 누군가와 마음을 터치하고 싶다. 무더운 날이다. 에어컨이 가동된 시원한 실내에 들어가 차 한 잔의 여유를 누리며 살랑살랑 마음을 내보이고 싶다. 그냥 서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벼움으로 말이다.
끊임없이 수시로 터치를 원하면서 막상 껴안으면 반려묘는 온몸으로 거부한다. 너무 강한 터치인가 보다. 집사는 보드랍고 말랑한 반려묘를 꼭 안아보아야 터치한 느낌이 든다. 손만으로 가볍게 털을 터치하는 것은 감촉도 깊지 않고 계속하다 보면 노동 같아서 손길이 둔해지며 멈추게 된다.
수영장에 성형미인이 있다. 타고난 기본이 있어 성형으로 플러스가 된 것 같다. 그런데 외모와는 달리 마음이 헐하다. 경계심이 없이 사람에게 쑤욱 다가선다. 그리고 멈추지를 못한다.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에 다니기에는 그녀의 외모는 너무 눈에 띄고 화려하다. 그런데 그러한 구분을 잘 못하는 것 같다. 아니 아예 구분선이 없는 듯하다.
외양을 보고 판단하는 사회인데 그것을 잘 감지하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아예 자신은 예외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잘 모르겠다. 수영 팁을 가르쳐 주겠다면 내가 운이 좋다고 한다. 그녀가 내일모레 미국에 가서 3개월 뒤에 온다고 한다. 미국에 아들과 남편이 있다고 한다. 묻지도 않았는데 계속 이야기한다.
아마도 영주권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아유, 볼 날이 없으니 지금 열심히 보아야겠네.’ 쳐다보니 웃는다. 수영장에서 몇 마디 하면 말이 길어지고 울려서 의도하지 않아도 시끄러워진다. 그래서 절대 수영장에서는 이야기 길게 하지 말자 하더라도 작게 하자 하고 결심했는데 막상 말을 하게 되면 잘 안 들려서 말을 크게 하게 된다. 그래서 필수적인 것만 대답하고 연습하려고 물속에 머리를 집어넣는다. 그러면 말이 길게 가지 않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이 성형미인은 묘하게 말이 끊어지지 않는다. 무지 심심한가 보다. 샤워실에서 만나자 한다. 그녀가 주로 사용한다는 샤워부스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 샤워를 끝냈다. 나가면서 잘 다녀오라 인사하니 샤워 마치고 백다방에 가자고 한다. 맛있는 차가 있는데 사겠다면서. 속이 안 좋아 약 먹는 중이라 다음에 하자고 감사하다고 했다.
그녀는 터치를 계속 원하는 반려묘처럼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가보다. 거부감 없이 다가오는 그녀를 경계하는 것이 미안하다. 하지만 한계선이 어디인지 확실치 않아 거절을 하게 된다. 그녀가 미녀까지는 아니지만 눈에 띄는 외모이긴 하나 성격은 백해무익하다고나 할까 백치미라고나 할까 애매하다. 아무튼 외로워 보이는 그녀와 차 한 잔 정도는 괜찮지 않나 싶다.
제시간에 약을 먹어야 될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녀와 간단한 수다를 했을 것 같다. 그 시간을 내주지 않은 것이 마음에 좀 걸린다. 한 번 더 쓰다듬어주고 나올 걸 하고 반려묘에게 미안한 마음처럼. 요즘 내가 많이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계산되지 않는 일은 모든 거절하거나 경계하고 있다.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다.
뭐가 그리 경계할 게 많아서 벽을 쌓고 사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의 천성과 맞지 않는 것 같아 활력이 없다. 내성적이지만 외향적인 것을 갖고 있어서 시키지 않아도 현장에서 활발해지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모든 것을 자제하고 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는데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런데 말하고 싶지 않다. 설명하기가 너무 길어서이다. 한마디로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싶어서 나머지 것들을 전부 차단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로만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고 싶은 것 그 한 가지에 집중하되 나머지 것도 조금은 열어야 활력이 생기고 윈윈이 된다는 것을. 그 조율이 좀 어렵긴 하다.
일에 집중하고 있으니 궁둥이 들이대며 터치를 기다리던 반려묘가 포기하고 가버렸다. 잘 때 좀 더 터치해 줘야지.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녀와 수다터치를 한 번 가져보자.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한 번이 계속되어 끊어내지 못하고 그녀에게 끌려 다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계산은 하지 말고 순수하게 수다하고 그때 결정하자. 반대로 내가 그녀를 끌고 다닐 수도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피해의식 속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실제 경험을 해봐야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못 참고 시위하듯 돌아다니다가 다시 책상 위로 올라와 안 보는 척 옆 눈으로 보고 있다. 또다시 내려가는 반려묘이다. 부르니 쪼르르 달려온다. 열심히 토닥여준다. 그르렁 대며 대만족 하고 있는 단순한 백치미 반려묘이다. 때로는 나도 백치미로 만족하며 살고 싶다